[imazine] 여름 철새인 듯 섬에서 쉬다

진성철 2022. 9. 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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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등대섬의 저녁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통영=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통영 뱃길을 달려와 비진도 산호길, 매물도 해품길, 소매물도 등대길을 걸었다. 비췻빛 바다에 몸을 담그고, 청띠제비나비 무리의 춤을 본 뒤 동화 같은 등대섬에 올랐다. 그리곤 여름 철새가 된 듯 선유봉, 장군봉, 망태봉에 앉아 바다가 툭툭 던져 놓은 섬들을 봤다.

비진도 해수욕장의 비췻빛 파도 물결 [사진/진성철 기자]

비진도, 두 개의 비췻빛 미인 바다와 산호길

피서객들이 비진도 바깥 섬과 안 섬을 잇는 모래톱 길을 걷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비진도에는 바다를 가르는 길이 있다. 바깥 섬과 안 섬을 잇는 모래톱 위에 만든 길이다. 비진도 외항 선착장에서 보면 그 길을 따라 바다가 아래위로 나뉜다. 통영에서 첫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안 섬으로 넘어가려 모래톱 길을 걸어갔다. 사람들이 바다 위를 걷는 듯했다.

미인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진도 해변과 바다. [사진/진성철 기자]

모래톱 길에 들어섰다. 조금 걷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절로 발이 멈췄다. 왼쪽 귀엔 모래 해변에 닿는 파도가 "쏴아~', 오른쪽 귀엔 자갈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가 "촤아~". 번갈아 조금 다르게 밀려왔다. 바다 사이에서 맞는 바람은 한여름 더위에도 시원했다.

한 가족이 저녁 무렵 비진도 모래톱 길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한 마을 사람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대접해 주며 "자갈 바다가 거칠면 모래 바다가 잔잔하고, 모래 바다가 떠들썩하면 자갈 바다가 조용하다"고 했다.

비진도 갯바위에서 낚시꾼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이 섬은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으로 비진도란 이름이 붙었다. 여름철 해수욕으로 인기가 많은 섬이다.

비진도 모래 해수욕장의 비췻빛 파도 물결 [사진/진성철 기자]

외항마을 앞 해수욕장은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얕다. 모랫바닥이 훤하게 보이는 비췻빛 맑은 바닷물이 좋다. 파도도 잔잔한 편이다.

비진도 자갈 해변 [사진/진성철 기자]

반대편 자갈 해변은 파도가 다소 거칠어 물놀이하는 사람이 적다.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작은 섬이지만 지난 2006년부터 해저 관로를 통해 수돗물이 공급된다. 하지만 편의점은 없고 동네 점방 몇 개만 있다. 식당도 저녁 7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 비진도에서 하루 이틀 머문다면 미리 장을 봐서 가는 게 좋다.

미인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비진도 [사진/진성철 기자]

비진도는 해변 못지않게 미인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이 멋진 섬이다. 미인도는 비진도의 다른 이름이다. 선유봉 정상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도 미인전망대로 오르는 비진도 산호길은 힘든 편이다. 산이 해변에서 곧장 하늘로 솟은 까닭이다. 산호길 군데군데 '멧돼지 주의' 안내문도 있어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전망대에 서면 흘린 땀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

미인전망대에서 바라본 거제도 남부면의 섬들 [사진/진성철 기자]

미인전망대에서는 모래톱이 좌우로 가른 두 개의 비진도 비췻빛 바다를 내려 볼 수 있다. 서쪽 바다에는 만지도, 연대도, 미륵도 등이 가득 보이고, 비진도 안 섬 너머로는 한산도, 통영, 거제도가 있다. 동쪽 바다에는 장사도, 거제 남부면, 대소병대도, 대소매물도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미인전망대에서 본 비진도 [사진/진성철 기자]

해 질 녘까지 머물렀더니 흑염소들이 나타났다. 전망대 나무 데크에 잔뜩 흩어져 있던 동글동글 콩알 같은 배설물의 주인공들이었다. 미인전망대는 흑염소도 알아보는 비진도 최고의 전망대였다.

매물도, 나비춤 보며 걷는 해품길

매물도 분교 야영장 아래 이약개 포구와 몽름 해변 [사진/진성철 기자]

매물도 당금마을 위 언덕에는 잔디가 깔린 야영장이 있다. 폐교된 매물도 분교가 야영장이 됐다. 낮은 관목, 풀들이 자라는 언덕과 좌우로 바다를 볼 수 있는 캠핑장이다. 야영장 아래에는 항아리 모양의 포구에 작은 몽돌해변도 있다.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포구 주변을 '이약개'라 불렀다. 해변은 '몽름'이라 했다. 몽름 해변으로 내려가는 비탈에는 실유카가 하얀 꽃송이를 방울방울 매달고 있어 이국적이었다. 실유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 식물이다.

해품길 홍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매물도분교 야영장과 어유도 [사진/진성철 기자]

야영장에서부터 매물도 해품길을 따라 걸었다. 여름이라 흐리고 바람 부는 날씨가 오히려 제격이었다.

남방노랑나비(왼쪽부터), 남방부전나비, 왕자팔랑나비, 큰멋쟁이나비 [사진/진성철 기자]

바다와 섬을 즐기며 매물도의 능선을 걷는 해품길 곳곳에는 나비들이 날았다. 남방부전나비, 남방노랑나비, 큰 멋쟁이 나비, 왕자팔랑나비, 굴뚝나비 등이 층층이꽃, 돌가시나무꽃, 맥문동, 이질풀 위를 날아다녔다.

청띠제비나비 무리 [사진/진성철 기자]

홍도, 등가도가 보이는 홍도 전망대를 지나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려갈 때는 청띠제비나비 10여 마리 무리가 하얀 꽃 위에서 춤추었다. 호랑나비 한 마리도 나풀거렸다.

해품길에서 바라본 매물도의 장군봉 [사진/진성철 기자]

매물도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으로 향했다. 산길도 가팔랐지만 '말벌주의' 안내문도 신경이 쓰였다.

장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진/진성철 기자]

장군봉 전망대에서 보니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길게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대구을비도, 소구을비도도 보였다.

장군봉 전망대에 설치된 조형물 '비상' [사진/진성철 기자]

전망대에는 장군과 말이 함께 있는 '비상' 조형물도 있었다. 매물도(每物島)란 이름이 군마의 형상을 닮아 붙었다는데 여객선을 타고 오가면서 봐도 딱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군봉에서 꼬돌개로 향하는 해품길 [사진/진성철 기자]

장군봉에서 꼬돌개를 거쳐 대항마을로 가는 오솔길에선 암소와 마주쳤다. 암소는 작은 오솔길을 막고 서서 쉽게 길을 트지 않았다.

오솔길에서 휴식 중인 암소 한 마리 [사진/진성철 기자]

'훠이 훠이' 소리쳐 암소를 언덕 아래로 밀어내자 이번에 맞은 편에서 송아지 3마리와 어미 소 한 마리가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소 무리는 언덕 위로 올라가 길을 내주었다.

소매물도로 가는 배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대항마을 위에 도착했다. 아래 선착장에서 마을 위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오던 주민이 땀에 젖은 나를 보고 여유롭게 거수경례했다.

아래 선착장에서 마을 위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오는 대항마을 주민 [사진/진성철 기자]

작은 섬 간의 이동은 쉽지 않다. 매물도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배는 하루에 몇 편 없다. 마지막 배편은 거제도 저구항에서 오는 오후 2시 15분 배다.

매물도 대항마을에 입항하는 여객선 [사진/진성철 기자]

행여나 해서 여객선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직원은 "선착장에 미리 나가 배가 지나갈 때 손을 흔드세요"라고 대답했다.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고 부탁했다. "여객선 승무원에게 연락해 저 좀 태워 가라고 해주세요."

소매물도, 푸른 밤바다 등대섬을 만나는 등대길

소매물도 망태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등대섬 [사진/진성철 기자]

소매물도는 딱히 갈 만한 해변이 없다. 하지만 등대섬을 찾아가는 여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머물 만한 섬이다. 등대섬에 가려면 물때를 맞춰야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 열목개가 열리는 까닭이다.

소매물도 망태봉 정상에 있는 매물도 관세역사관 [사진/진성철 기자]

마을 가운데 가파른 길에서 이어지는 등대길을 올랐다. 산등성을 따라 조금 걸으니 망태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매물도 관세 역사관이 있다. 역사관은 예전엔 밀수선을 감시하던 초소였다.

망태봉 전망대대에서 바라 본 등대섬 [사진/진성철 기자]

박물관 앞 짧은 오솔길을 지나자마자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수평선이 보이는 넓은 바다 가운데 비탈진 푸른 언덕의 섬이 나타났다. 섬 언덕 맨 위에는 빨간 지붕을 쓴 하얀 등대가 남해를 등지고 섰다. 언덕 아래에는 붉은색 건물 지붕이 등대 꼭대기와 색깔을 맞추었다. 등대 옆으로는 서너 개의 뾰족이 솟은 총석단애가 돋보였다.

탐방객들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의 열목개를 건너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소매물도의 깎아지른 절벽을 나무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 해변에 발을 디뎠다. 해변에서 굵은 몽돌을 밟으며 열목개를 건넜다. 등대섬 언덕을 5분여 오르니 드디어 아름다운 등대에 도착했다.

등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물고기의 등뼈 가시를 닮았다는 바위섬인 등가도가 가까이 보였다. 소매물도 쪽을 돌아보니 이번엔 공룡 바위가 바다로 목을 길게 빼고 누워 있었다.

등대섬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공룡 바위 [사진/진성철 기자]

서울에서 등대섬을 찾은 이는 자연 그대로 보전된 등대섬이 너무 예쁘다고 했다. 또 "소매물도 오는 뱃길 동안 섬들 보느라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뱃삯이 너무 싸다고 생각했다"며 기뻐했다.

불 밝힌 등대를 보려면 소매물도에 하루 묵어야 한다. 육지로 나가는 마지막 배편은 오후 4시면 끊어진다.

소매물도 앞 가익도와 바위섬 이로 멀리 보이는 등가도 [사진/진성철 기자]

오후에 다시 한번 등대섬이 보이는 전망대로 향했다. 마을 중턱에서 소매물도의 둘레를 걷는 코스를 택했다. 얼마 걷지 않아 보기 드문 반가운 친구가 등장했다. 여름 철새인 후투티가 오솔길 가운데 서 있었다. 다가가자 후투티는 남매 바위 위로 날아갔다. 무서운 친구들도 출현했다. 대륙유혈목이 등 새끼 뱀들이 기어가다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다. 소매물도 등대길엔 '독사주의' 안내판이 곳곳에 있다.

남매바위에 앉은 후투티

망태봉 전망대에 도착해 혼자서 서너 시간 동안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구름 잔뜩 낀 하늘에 노을이 아주 살짝 질 때쯤 바다의 배들이 조명을 켰다. 곧이어 등대도 불을 밝혔다. 등대 불빛은 빙글빙글 돌며 푸른색이 감도는 저녁 바다를 비추었다.

바다를 건너온 여름 철새 마냥, 그렇게 섬에 앉아 바다, 하늘, 섬들을 바라봤다. 올해 여름은 섬에서 쉬었다.

매물도 홍도전망대에서 바라본 홍도(왼쪽)과 등가도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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