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임윤찬만이 아니다..놓치면 탄식할 젊은 실력파 피아니스트들

임석규 2022. 9.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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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래식 열풍]국제콩쿠르서 우승·입상한 박재홍·문지영·서형민·김도현
지난해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콩쿠르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 젊은 피아니스트들도 주목하시라.’

조성진과 임윤찬, 두 걸출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판을 주도하는 국내 클래식 공연 시장 한쪽에서 들리는 얘기다. ‘스타 피아니스트 2인방’에게 대중의 관심과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면서 젊고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상대적으로 그늘에 가리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다. 협소한 국내 클래식 공연 시장 탓에 두 사람에 대한 쏠림현상이 빚어내는 그림자는 더욱 짙어 보인다.

조성진과 임윤찬의 공연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완판’되고 있다. 지난달 말 조성진의 연세대 공연은 ‘플로어 1천석’을 포함해 8500석의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전문 콘서트홀이 아니라 앰프를 사용한 야외 노천극장 공연인데도 이른바 ‘조성진 피케팅’(피를 튀길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 현상은 식지 않았다. 다음달 5일과 6일 공연이 잡혀 있는 임윤찬의 공연 티켓을 구하는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언제 나올지 모를 취소 티켓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애타는 마음에 예매 사이트에서 ‘취케팅’(취소 티켓 구하기)에 몰두하는 팬들의 사연도 인터넷 곳곳에 나돈다.

2015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마포문화재단 제공

임윤찬 공연을 유치하지 못한 각 지역의 공공 공연장들은 차선책으로 그의 스승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앞다퉈 접촉하고 있다. 올해 6차례의 공연이 확정된 손 교수는 내년 공연 일정도 속속 잡히고 있다. 심지어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회장 이창주 빈체로 대표)조차 오는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음악회’에 협연자로 임윤찬 등 몇몇 연주자를 초청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손민수 교수의 공연으로 돌렸을 정도다.

물론 공연업계와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성진과 임윤찬의 탁월함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뛰어난 연주력에 깊은 음악성까지 갖춘 천재 연주자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연주자에 대한 쏠림의 정도가 지나쳐 국내 음악계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현업에 있는 한 클래식 공연 기획자는 “조성진과 임윤찬 두 스타 연주자들에게 관심이 다 쏠리는 바람에 다른 좋은 피아니스트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부소니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고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을 받은 피아니스트 김도현. 마포문화재단 제공

공적 예산이 투여되는 공공 공연장들마저 관객 반응에 휩쓸려 인기 있는 공연들만 기획하는 것은 ‘예술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선희 전 국립심포니 대표는 “클래식 스타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클래식 저변을 확대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쪽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스타 쏠림현상이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의 무대를 더욱 좁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연주 레퍼토리에 도전하며 입지를 다져가는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 지난해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콩쿠르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대표적이다. 그는 22일 마포문화재단이 여는 ‘엠(M)클래식 축제’ 메인공연에서 김광현이 지휘하는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과 협연하며, 29일엔 별도의 리사이틀도 연다. 다음달 9일과 10일엔 경기아트센터와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과도 협연한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어 ‘순수 국내파’로 꼽히는 그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부소니 콩쿠르에서 박재홍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을 받은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2015년 부소니 콩쿠르에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도 ‘엠클래식 축제’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명성 있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기량을 인정받은 이들조차 대중들의 티켓 반응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휘에도 재능이 있는 피아니스트 서형민이 외국 연주자들과의 공연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위르겐 슈바르츠(Juergen Schwarz)

지난해 독일 본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서형민은 국내에서 많은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작곡과 편곡, 지휘에서도 재능을 발휘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독일 ‘본 베토벤 페스티벌’에 참석해 직접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을 연주하고, 자신이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지휘했다. 다음달엔 독일 11개 도시를 돌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다. 지난해 열린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최종 결선에 진출한 피아니스트 이혁은 지난달 롯데콘서트홀과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회를 열었지만 앞으로 잡힌 공연은 많지 않다.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과 2019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손정범도 주목되는 연주자다. 임윤찬이 우승한 올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선에 진출한 김홍기, 박진형, 신창용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달 6일 미국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임주희도 주목되는 연주자로 꼽힌다.

다음달 6일 미국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임주희. 목프로덕션 제공

국제콩쿠르 우승이 규모가 큰 대중적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창구가 되는 시스템도 문제지만, 그나마 새로운 우승자가 등장하면 이전 우승자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점점 무대에서 잊히는 악순환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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