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광물로 가는 자동차

김지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 9. 22. 07:05 수정 2022. 9. 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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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때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된 은의 1/3이 중국에 모인 적이 있다. 16세기 말부터 약 2백 년 동안이다. 잉카와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은 이 기간 현지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동원해 매년 수만 톤의 은을 캐냈고 그들의 식민지 필리핀을 통해 중국으로 흘려보냈다. 당시 스스로 풍족하다고 믿었던 명과 청이 유일하게 아쉬워한 것이 화폐를 만들 은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에는 '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광물이 쌓이고 있다. 리튬이다. 리튬은 전기동력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 '하얀 석유'라고도 한다. 중국은 세계 3위 리튬 생산국임에도, 필요한 리튬 대부분을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와 호주에서 수입한다. 최근에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땅 아프리카로도 눈을 돌려 리튬 광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리튬 해외의존도는 80%에 가깝고, 이제 세계 리튬 채굴량의 반 정도가 중국으로 흘러들어온다. 작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50%를 넘었고 전 세계에서 팔린 전기차 6백6십만 대 가운데 절반이 중국에서 팔린 점을 고려하면 이 희귀한 광물에 대한 중국의 탐심을 가늠할 만하다.

한국은 이 광물을 중국에 의존한다. 한국은 필요한 리튬-정확히는 가공된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온다. 중국은 리튬 소재 공급에 있어서는 전 세계 2/3를 차지한다.

그런데 최근 리튬 공급에 비상등이 켜졌다. 작년 한 해 리튬 가격이 약 6배 증가한 것이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의 가파른 상승이 그 주된 원인이다. 작년에 판매된 전기차는 전년 대비 두 배 늘었는데, 매주 판매된 대수가 2012년 한 해 동안 팔린 총합보다 컸다.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도 한몫한다. 중국 리튬 생산의 약 30%를 책임지는 쓰촨성은 전력 대부분을 양쯔강 수력발전에 의존하는데, 폭염과 가뭄으로 양쯔강 수위가 19세기 중반 관측 이래 최저점으로 떨어져 그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다. 중국 양쯔강 유역의 극심한 더위와 갈증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인재(人災)도 문제다.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팔리는 전기차가 구매보조금(세금공제)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지역 내에서 최종 조립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년 1월부터는 탑재된 배터리 핵심 광물 중 40% 이상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어야 한다. 2027년이면 그 적용 비율이 80%에나 이른다. 중국 기업 등 소위 '우려 외국 기업'에서 조달된 광물이 소량이라도 있으면 애초부터 보조금 대상에서 빠진다.

전기차 수출 세계 4위인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은 미국이고 한국은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으나, 곧바로 이 법에 따라 수출되는-즉, 북미에서 조립되지 않는-한국 전기차는 보조금을 못 얻고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이를 두고 중국의 '환구시보'는 "워싱턴이 한국 등에 칼을 꽂았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실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6조원이 넘는 전기차 생산 공장을 애초 계획보다 약 6개월 앞당겨 서둘러 완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리튬으로 달리는 차라면 보조금을 기대할 수 없다.

보조금을 위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리튬을 버리고 새로운 공급선으로 갈아타야만 할까? 지난 6월 미국 주도의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ineral Security Partnership)' 출범식에 참석해 그 참여 의사를 밝힌 한국 정부가 단기간에 값싼 대체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을까? 기업이 또 다른 고비용을 물게 될까 걱정이다. 길은 험하고 '운전자'의 균형감각과 노련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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