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스토킹 피해 예방 위해 '조건부 석방제' 검토해볼 만하다

조선일보 2022. 9. 2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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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철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 2022.9.2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여성 역무원 피살 사건 이후 여러 가지 스토킹 재발 방지 대책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스토킹 사건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했고,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해 일정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는 대법원의 제안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구속영장 단계에서 주거 제한, 위치 추적 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보증금 납부 등의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하되 이를 어길 경우 구속하는 것이다. 사실상 ‘조건부 구속영장제’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에서 스토킹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작년 10월과 올 1월 두 차례 가해자를 고소했다. 작년 10월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판사는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경찰은 2차 고소 때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고, 결국 참극이 발생했다. 현행법상 구속 요건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로 정해져 있다. 결정도 구속·불구속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구속 요건 중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피해자의 1차 고소 때 가해자는 주거가 일정했고, 혐의 내용을 인정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판사가 재범 위험성을 너무 가볍게 본 측면은 있지만 법 규정이 그러니 모든 게 판사 탓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만약 조건부 석방제가 있었다면 판사는 주거 제한, 위치 추적 장치 등 각종 제한을 붙였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어느 정도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올 8월까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된 7152명 중 구속된 사람은 4% 선인 254명에 불과했다. 입건된 사건 중 혐의가 가벼운 것도 있겠지만 구속·불구속 판단이 애매해 수사기관이 아예 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일 것이다. 조건부 석방제가 있다면 수사기관에서도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인 스토킹 범죄에 대해선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판사들도 구속에 대해 느끼는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 도입으로 수사기관들이 구속에 목 매는 관행을 바꿀 수도 있다. 구속은 유무죄 판결이 아니라 수사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검찰이나 경찰은 마치 구속이 유죄 판결인 것처럼 행동해왔다. 이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조건부 석방제’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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