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프로그램이 24개 “심심할 틈 없어요”
지난 15일 오후 1시 반 경남 창원시 명서초등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교정에 노란색 버스 3대가 들어서고 버스에서 아이들 수십명이 내렸다. 이곳은 경남교육청이 운영하는 거점통합돌봄센터 ‘늘봄’. 명서초뿐 아니라 의창·명도·도계초 등 인근 6개 학교 학생(1~4학년)까지 모두 138명이 이곳에서 방과 후 오후 8시까지 돌봄을 받는다.
장소는 학생이 줄어서 비어 있던 명서초 별관을 28억원을 들여 개·보수해 마련했다. 교육청 장학사가 상주하면서 인력 관리부터 프로그램 운영까지 전담한다. 연간 10억원 예산이 들어가며, 버스비나 저녁 급식·간식비는 무료다. 그냥 모여서 함께 지내는 게 아니라 로봇과학, 클레이아트, 바이올린, 한자, 뮤지컬 등 방과후 프로그램 24개를 골라서 듣는다. 이 프로그램은 수업당 수강료 2만~4만원을 받는다. 아이들은 돌봄교실에서 간식을 먹거나 책을 읽다가 신청한 방과후 프로그램 시간이 되면 들으러 간다. 돌봄교사나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이 시간 맞춰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알려준다. 의창초 1학년 이시예양은 “오늘은 방과 후 수업 중에 가장 좋아하는 ‘로봇과학’을 듣는 날이라 신난다”고 말했다.
이 거점센터는 윤석열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전국 초등학교에 도입하겠다는 ‘초등 전일제 학교’ 모범 사례다. 윤 정부는 정규 수업이 끝난 후 맞벌이 가정 자녀 등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다채로운 수업을 제공하면서 돌보겠다는 것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지금도 방과 후 초등생들을 맡아주는 돌봄교실이 전국에 1만4970개 있지만 학부모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한다. 경기도는 작년 돌봄을 신청한 학생 6만9759명 중 6만3833명만 ‘합격’했다. 5000명 넘게 떨어진 것이다. 서울에서도 약 1000명이 돌봄교실 입성에 실패했고, 늘봄센터가 위치한 경남 창원시에선 6511명이 신청해 250명이 떨어졌다. 더욱이 전국 돌봄교실 중 70%(1만442개)는 오후 5시 전에 끝나 맞벌이 부모들이 퇴근하는 오후 6~7시까지 한두 시간가량 공백이 생긴다. 이런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윤 정부는 돌봄교실을 대폭 확대하고 시간도 오후 8시까지 늘리겠다는 정책을 공개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일단 환영이다. 늘봄센터만 해도 작년 만족도 조사에서 학부모들이 전부 ‘매우 만족’ 또는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부모 조시운(42)씨는 “처음엔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이동해야 하는 게 걱정도 되고 미안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학교는 안 가더라도 늘봄은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걸 보고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용 학생 138명 중 115명은 6시 전에 집에 가고, 23명은 최대 8시까지 남아있다. 6시 이전엔 6개 교실이 운영되다가 이후엔 한 교실에 모여 저녁도 먹고 그림책을 읽거나 만들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경남교육청은 돌봄 수요는 많은데 학교마다 그만큼 돌봄교실이 늘어나지 않자 인근 지역 초교를 통합해 돌봄센터를 만들었다. 돌봄 업무는 정규수업 이외 업무이고 돌봄전담사를 관리하는 업무 등이 번거로워 학교들이 난색을 표하기 때문에 교육청이 직접 나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경남교육청 배인숙 장학사는 “아이들을 최대한 자기 학교에서 돌봐주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거점통합돌봄’이라는 새 모델을 전국 최초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1호 센터가 반응이 좋자 이달 초엔 창원 상남초에 2호 늘봄센터도 열었다.
교육부는 경남교육청처럼 학교마다 돌봄교실을 늘리는 동시에 ‘늘봄’ 같은 거점센터를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예산과 인력이다. 이렇게 오후 8시까지 맡아주는 돌봄센터를 확대하려면 추가 예산을 확보하고 관리 인력도 충원해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청뿐 아니라 지자체가 예산을 함께 부담하는 모델도 검토 중”이라며 “올해 안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내년엔 시범 운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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