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47] '오늘 같은 밤이면'의 박정운을 보내며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2. 9.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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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悲報)가 들려왔다. ‘오늘 같은 밤이면’ ‘먼 훗날에’ ‘내일이 찾아오면’ 등의 노래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박정운이 간경화로 투병하다 지난 17일에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1965년에 아버지 박선길과 어머니 박일양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박정운은 9살 때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고국에 돌아와 1989년에 ‘Who, Me?’로 데뷔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노래들이 각광받던 시대다. 신세대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X세대나 오렌지족과 같은 신조어가 나왔고, 1992년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댄스음악이 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때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노래방’이다.

이른바 ‘전 국민의 가수화’를 이끈 노래방은 1992년 10대 히트 상품에 선정되었고, 노래방 특수에 힘입어 그해 12만 대 이상의 노래방 기기가 팔렸으며, 7만 대의 기기를 수출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유독 노래방에서 인기를 끌던 노래들이 있었는데,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도 그중 하나였다. 그 시절 노래 좀 한다는 사람치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안 불러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 박정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의 아버지 박선길이 우리나라 1960년대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미8군 무대에서 활약했던 박선길은 ‘쇼 오브 쇼즈(The Show of Shows)’의 단장이기도 했다. 미8군 오디션에 나온 김희선(당시 이름은 김명자)을 본 그는 화음 위주의 여성 트리오를 만들기 위해 김희선의 친언니 김천숙과 그 친구 이정자로 팀을 꾸렸다. ‘이시스터즈’의 탄생이었다. 이시스터즈의 눈부신 활약 뒤에 박선길이 있었던 것이다.

작·편곡자와 기획자 등으로 활약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은 박정운은 ‘오늘 같은 밤이면’을 위시하여 상당수의 노래를 본인이 직접 작사하고 작곡했다. 그의 거친 목소리는 감성적인 노랫말과 어우러지며 당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누구나 그렇듯이 굴곡진 삶을 견디며 3년 전부터 가수 박준하와 함께 새로운 노래를 준비 중이었으나, 야속하게도 세월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갔고 한때 노래방에서 뜨겁게 불태웠던 어느 청춘의 한때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만은 남았으니, 그의 노래로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하기로 한다.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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