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어느 개도국 외교관의 하소연
“미국 같은 서방 강국들이 중요한 건 알지만, 우리한테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만난 서울 주재 중앙아시아 국가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올해는 한국과 중국의 수교 30주년이지만, 소련이 해체되며 독립한 중앙아시아 5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수교한 지 3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외교관의 말에선 미국과 중국 등 이른바 주요국들에 비해 좀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한국 외교 당국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몇 달 전 중남미 국가 대사관 사람과 만났을 때도 “(한국 정부가) 우리 존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는 한국 외교사에 의미가 큰 해다. 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이스라엘·모로코 등 중남미 및 중동 20여국과 수교해 1960년대 북한과 치열한 제3세계 외교전에서 성과를 거둔 지 60주년 되는 해다.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과 구 소련권 국가 등 10여 국과도 국교를 맺어 ‘북방 외교’를 완성한 지 30주년 된 해이기도 하다. 이 같은 외교 성과로 현재 전 세계 114국이 서울에서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온두라스·잠비아 등 이름도 낯선 나라들이 외교관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에 대사관을 개설한 제3세계·개발도상국들은 전쟁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고 신흥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한국 사례를 배우기 위해 대부분 자국의 엘리트 외교관들을 보낸다. 반세기 전만 해도 각국 외교관이 기피하는 격오지로 분류됐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우리 정부가 중앙아·남미·아프리카 등에 대한 관심이 의도적으로 소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외교가에서 활동하는 일선 외국 외교관의 말을 들으면 이들 나라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외교 역시 경제나 교육에서처럼 정책만큼 ‘포장’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외신과 학계에서 한국은 국력에 비해 외교 관심사가 지나치게 자국 중심적이라는 비판과 지적이 제기돼온 것도 사실이다.
미국 뉴욕에선 제77차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다. 전 세계 200곳에 달하는 각국 최고위급 인사들이 날아와 물위·물밑을 가리지 않은 활발한 외교전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도어스테핑’ 등을 통해 이전 대통령들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이번 유엔 총회를 시작으로 향후 외국 순방과 정상회의 등 정상 외교에서도 발휘됐으면 좋겠다. 특히 올해에는 수교 30·60주년 국가들과 각별하게 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국이 자국 국익에만 집중한다는 이미지가 희석될수록 국제무대에서 외교로 국익을 챙길 수 있는 공간은 넓어진다. 만남과 악수 한 번이 양국 미래 관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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