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소송, 정부는 “승산 있다”지만… 이자만 175억 더 물 수도

김홍수 논설위원 2022. 9.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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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론스타 판결이 남긴 질문들
2010년 11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과 론스타 존 그레이켄 회장이 영국 런던에서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두 사람은 2011년 12월 다시 만나 ‘가격인하 계약’을 새로 맺는다. /연합뉴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 소송이 10년 만에 결론이 났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 46억8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2억1650만달러와 이자(1370만달러)를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그간 소송 준비에만 470억원가량을 쓰면서 총력 대응한 결과, 조(兆) 단위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손해를 끼쳤다는 점이 인정된 만큼 ‘사실상 패소’라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는 판정 취소 신청을 하겠다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재판부가 ‘정부 매각 지연’ 인정한 이유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배상을 요구한 항목은 크게 3가지다. ①2008년 HSBC 매각 불발에 따른 손실 ②부당한 과세 ③2011년 하나금융지주 매각 지연과 가격 할인에 따른 손실 등 총 46억8000만달러 중 ①, ② 항목(합계액 44억6000만달러)은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재판부는 ③ 항목만 손해를 인정하면서 론스타 요구액의 50%만 주라고 판결했다.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일지

론스타가 요구한 ③의 손해액은 2011년 7월 하나금융과의 첫 계약 금액과 그해 12월 두 번째 가격 인하 계약 간 차액(약 6000억원)이다. 한국 정부의 의도적 승인 지연 탓에 하나은행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가격 인하 계약을 했으니 그 손해를 물어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양자 간 가격 협상에 전혀 개입한 바 없다고 해명해 왔지만, 재판부는 몇 가지 정황증거를 들어 한국 정부의 의도적 지연을 인정했다. 그 정황증거는 뭘까.

판결문 전문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론스타가 재판부에 제출한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과 론스타 존 그레이켄 회장 간의 대화 녹취록이 유력한 증거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2차 가격 인하 계약 당시 존 그레이켄 회장은 “가격을 인하한다면 금융위가 승인할 것이라는 걸 어떻게 보장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하루 이틀 내 보장하겠습니다. 내일 밤 금융위원장이 런던에 옵니다…. 금융위원회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습니다”라고 답한다.

재판부는 이 녹취록 등에 근거해 한국 정부가 “매각 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wait and see(지켜보기)’ 전략을 취했으며, 규제 권한을 자의적, 악의로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또 “정치권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있었으며” “정치인들이 금융위원장에게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가격 인하 성공을 축하하기도 했다”고 판결문에 밝혔다. 한동훈 법무장관도 “국회 속기록에서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금액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과 낮춘 부분을 잘했다고 칭찬했다는 부분들이 중재 판정에 명시되면서 우리가 일부 패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 “승산 있다” 과연 그럴까?

한 법무장관은 “중재판정부 소수의견이 우리 정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 봐도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피 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면 안 된다”면서 ‘판정 취소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담당 과장은 “판정이 2대1로 의견이 갈렸는데 이례적으로 판정문에 한국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40페이지가량의 소수의견이 실린 만큼 취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부 구성과 판정 요지를 자세히 보면 승산이 희박한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재 재판부는 의장 중재인 1명, 중재인 2명 등 총 3명으로 구성되는데, 부심 격인 중재인 2명은 소송 당사자인 론스타와 한국 정부가 각각 선임한 사람들이다. 재판부 판사 중 “론스타가 ‘먹고 튀었다(eat and run)’ 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 “가격 인하 압력은 간접적 정황증거뿐” “하나은행이 가격이 인하되면 금융위가 반길 것으로 추측했을 뿐”이라면서 한국 편을 든 중재인은 한국 정부가 선임한 프랑스인 국제법 전공 교수 브리지트 스턴(Brigitte Stern·파리1대학 명예교수)이다. 우리 측 대변인의 소수의견을 근거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ICSID는 판결 취소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재판부의 권한 이탈, 뇌물 수수, 기본 심리 규칙 이탈, 판정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을 때 등이다. 이번 판정이 취소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도 드물다. 지금까지 ICSID의 무효 신청 356건 중 ‘전부 무효 판정’은 6건(1.6%)뿐이다. 한국처럼 피투자국이 제기한 취소 신청 등 유사 사례만 따로 추려도 무효 판정 확률은 10% 수준(법무부 주장)에 그친다. 이런 확률에 기대어 막대한 소송 비용을 써가며 소송을 이어가는 게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일까 의문이다.

취소 소송에서 진다면…

ICSID가 판정 무효 절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을 심리한 결과, 이유 없다고 기각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배상금을 물어줄 수밖에 없다. 배상금은 첫 판결 당시 ‘2억1650만달러+이자 1370만달러’에 추가 지연 이자를 더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론스타 배상금의 지연 이자는 1개월짜리 미국 국채 금리(현재 연 2.45%)를 기준으로 삼아 복리로 계산하게 돼 있다. ICSID가 전부 무효 판정을 내린 6건의 심리 기간은 평균 2년 2개월이었다. 론스타 배상금을 2년 2개월 복리로 계산하면 추가로 지급해야 할 이자가 175억원에 달한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부는 ‘피 같은 세금론’에 포획돼 ‘끝까지 가보자’는 쪽이다. 국민 정서, 정치권 공세에 떠밀려 매각 승인을 미룬 끝에 3200억원 배상 판결을 받았는데, 똑같은 시행착오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3200억 론스타 배상금, 누구한테 물리나]

정부가 세금으로 론스타 배상금을 물어주면 그걸로 끝일까. 시민단체 등에선 빌미를 제공한 전·현직 경제 관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해 그들에게서 배상금을 받아내라는 것이다. 국제 통상법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2012년 외환은행 매각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공무원들과 이익을 본 곳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고의’나 ‘중대 과실’이 입증되지 않고는 공무원을 상대로 한 구상권 행사가 쉽지 않다. 고의성이 입증된다 해도 전직 관료 몇 명한테서 3000억원이 넘는 돈을 회수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한테서 그 돈을 받아내라는 주장이다. 정부 도움(?) 덕에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첫 계약 금액보다 6000억원가량 싸게 샀으니 이젠 그 수익을 토해낼 차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쉽지 않다. 정부가 하나금융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시나리오는 법리 구성이 어렵다. 이익의 주체는 하나금융이지만, 손실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론스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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