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동학과 안중근의 ‘바보정신’
1894년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에 무참히 패배했다. 동학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기관총과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대항했던 동학농민군이 당시 사용한 무기라고는 죽창과 농기구, 재래식 화승총뿐이었다. 우금치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은 단 1명이었다. 동학농민군 전사자는 3만명이었다. 무기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너무나 참혹한 죽음이다.
동학농민군 전투 규율 전문이 최근 발굴되었다. 이 규율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사람 목숨만은 해치지 말고 도망가는 자는 쫓지 말라.” “굶주린 자는 먹여주고 병든 자는 치료해주고 항복하는 자는 사랑으로 받아들여라.” 이것이 정말 군대의 규율인가. 상대를 죽이지 않는 전투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일본군은 평화시위대를 학살한 것인가. 일본 정규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부하들에게 저러한 규율을 명령한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로부터 14년 뒤, 안중근 의사는 의병대를 조직했다. 일본군 포로를 잡았지만 방면하려고 하자 부하들이 펄쩍 뛰었다. 일본군은 우리 의병을 잡으면 바로 처형하는데 우리는 왜 저들을 놓아주느냐는 항의였다. 안중근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부하들을 설득했다. “포로를 처형하는 것은 만국공법을 어기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그들을 잡아둘 포로수용소가 아직 없다. 그러니 그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다.” 안중근은 포로들에게 침략 행위를 중지하라고 훈계한 다음 무기를 돌려주고 그들을 방면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의병 주둔지를 파악한 포로와 일본군이 의병대를 공격했고 의병대는 막심한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 안중근은 동포들로부터 바보짓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동학농민군의 전투 규율과 안중근의 행동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바보짓이다. 하지만 당시의 동학농민군과 안중근의 입장에서 우리를 보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쪽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에 가까울까.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망가진 것일까. 인류 문명이 위기에 처했다면 그 위기는 어쩌면 우리가 저 위대한 바보들의 사상을 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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