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공간은 인간이 완성한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2022. 9.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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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한 100년 정도 ‘보평청(報平廳)’이라는 전각 이름이 유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보평청이란 임금이 나와 직접 국가의 일을 처리하고 경연을 열어 학자와 함께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고려 말부터 사용된 이 이름은 조선 건국 후 태조 대 경복궁과 태종 대 창덕궁의 전각에도 그대로 붙었다가 이후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고려 말 사람들은 군주가 공적 장소에서 관료를 만나 정치를 논하고, 경연을 통해 공부하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이 대신과는 멀어지고 환관과 친해져 백성의 현실이나 나라의 존망에 관한 문제들을 알 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임금이 신하들과 정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사극에서는 맨날 임금과 신하가 옥신각신하던데? 그러나 고려 말에는 군주가 구중궁궐에 거처하며 관료는 만나지 않고 정치는 방치하는 사이에, 왕의 측근들이 벼슬을 팔고 형벌을 자기 멋대로 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충숙왕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런 시대였기에 공적 장소에서 관료와 함께 정치를 한다는 뜻의 보평청이라는 이름을 궁궐의 편전에 붙인 것이다. 조선의 건국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절실하게 계승하여, 새로 짓는 궁궐마다 이 전각을 건설했다.

이러한 이상을 담은 공간을 만들었으니 이제 모든 정치는 이들의 의도대로 술술 풀려나갔을까? 그럴 리가! 공부방을 마련해주고 좋은 책상을 넣어줬다고 애가 공부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임금이 하기 싫다고 피해버리면 그뿐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이 나이에 공부를 한다고 뭐가 늘겠냐며 경연을 피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군주의 공부는 단순히 뭘 외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어진 사람을 만나 군주의 덕성을 키우고 환관 같은 부류를 멀리하는 데 있다고 타일렀다. 경연이 실질적으로 안착된 것은 세종이라는 경연에 진심인 군주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였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군주에 따라 언제고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다.

공적 장소의 마련은 임금과 신하가 논의하며 만들어가는 바른 정치의 시작 지점이었을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조선에서는 정치논의를 모두 기록하고 이 기록을 후대에 평가할 것이라며 두려워하라고 강조했으며, 사관의 위상을 높이고 관련 제도를 구비했다. 그러나 실제 정치 현장에서는 갈등이 빚어졌다. 사관들은 임금이 정치를 행하는 모든 공간에 자신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임금이나 대신은 이를 꺼려했다. 보평청, 즉 편전은 그 갈등이 벌어진 주된 장소였다. 침전은 사관이 들어가지 않고 정전은 들어간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으나, 그 중간지대인 편전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15세기 말 성종 대에 이르러서야 편전에도 사관이 들어와 지필묵을 가지고 기록을 하는 모습이 자리 잡혔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전각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는 사관의 모습이 자리잡는 데 근 100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도 잠시, 모든 제도와 관행을 부수는 데 거리낌이 없던 연산군 대에 이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연산군은 사관에게 일반 정치 얘기나 쓰지 임금의 일은 기록하지 말라는 명까지 내리기도 했다. 건국의 이상을 담은 공간과 그 공간을 제대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을 갖추는 데에는 한 세기가 걸렸으나 무너지는 데는 10여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를 복구하는 것은 오롯이 후세의 부담이 됐다. 공간은 중요하나, 그 공간을 그 공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의 행위와 의지다. 궁궐 거닐기 딱 좋은 이 가을날, 보평청의 계승인 경복궁의 사정전(思政殿)에서 이들의 이상과 고민,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정도전은 이 전각에 마침 “생각 사”자를 써서 이름을 붙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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