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일요일 아침에 받은 마지막 환자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2. 9.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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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벌써 스물세 시간 근무 중인 응급실에 있었다. 간밤에 분주하다가 아침에 한산해진 참이었다. 사람들이 휴일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응급실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었다. 한 시간 남은 퇴근 준비를 하는데 정적을 깨뜨리는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싱크홀 사고입니다. 50대 노동자, 심정지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퇴근이 미뤄질 것 같았다. 중환 구역을 비우고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싱크홀이라면 당연히 추락 사고다.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 환자에겐 필요한 처치가 많다. 중환 구역 간호사가 외상 환자 처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감이 몰려왔다. 가끔 도로 밑의 검고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바닥이 깨지며 그 공간으로 추락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환자는 곧 도착했다. 그는 거대한 펄밭에서 건져낸 것 같았다. 추락 지점이 진흙이었던 모양이었다. 도로 공사 복장에 진흙이 그대로 씌워져 있어 심폐소생술 하는 구급 대원도 흙투성이였다. 즉시 병원 침대로 옮겼다. 습기를 머금은 진흙이 후드득 떨어졌다. 벌써부터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어색하게 꺾였다. 심정지가 발생했다면 저 정도 골절은 당연했다.

일단 맥이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거구의 환자였고 진흙에 추락했다면 살릴 수도 있었다. 삽관을 위해 왼손에 블레이드를 들었다. 입안이 흙과 모래로 가득 차 엉망이었다. 오른손으로 환자의 입안에서 진흙을 퍼냈다. 위에서 나온 토사물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블레이드로 시야를 확보했다. 입안의 까끌거림이 블레이드를 통해 왼손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기도를 찾아 관을 넣고 공기를 불어넣자 검고 탁한 물이 관을 통해 그의 폐에서 역류했다. 즉시 터져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대원님. 환자 물에서 건졌습니까? 추락이라고 들었는데요.”

“도로가 깨지면서 상수도가 같이 터졌습니다. 현장이 물구덩이여서 정리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흉부를 압박하면서 그의 육체를 진찰했다. 한쪽 팔과 다리에 골절이 있었고 골반이 덜그럭거렸다. 복부도 지나치게 팽창되어 보였다. 추락으로 인한 손상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사인은 아니었다. 그는 추락한 뒤 그 안에서 분명히 살아있었으니까.

죽음까지의 경위가 머릿속에서 끔찍하게 맞춰졌다. 그는 불시에 땅 아래로 추락했다. 빛이 한 줄기 들어오는 어둡고 캄캄한 공간이었다. 파열된 상수도관에서 나오는 물은 맹렬하게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골반과 다리가 깨져 일어설 수 없다.

그의 몸 어딘가로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는 지금 이렇게 조용하게 사지를 뻗어 누워 있지만, 당시에는 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어둠을 이기고 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러진 팔다리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결국 그는 저 검은 물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폐에서 나오는 흙탕물이 그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도움의 손길은 오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혼자였다. 흉부 압박으로 그의 사지가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두려움을 느꼈다. 추락의 손상으로도 인간은 사망하지만 진흙물로 숨을 막아도 인간은 사망한다. 한 사람에게 둘 다 일어날 필요는 없다. 그 어두운 물이 얼굴을 타넘는 순간 인간에게는 어떤 고독이, 어떤 절망이 닥치는 것일까.

소생술은 무의미해 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 단잠을 자는 동안 힘들게 일하던 노동자였다. 이제 사람들은 고통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것일 뿐이니까. 나는 소생술을 중단했다. 바깥에는 그의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망 통보가 오늘 내 마지막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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