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지방' 생각하기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2022. 9.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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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가 지나가던 때의 정황은 상징적이었다. 아직도 복구 작업이 진행될 정도로 한반도 동남 해안을 세게 타격하고 간 태풍은 일부 ‘서울사람들’에게 ‘강 건너 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역대급이었던 것은 태풍이 아니라 정부와 미디어의 호들갑이라며 ‘속은 느낌’이라고도 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그런데 어쩌면 그런 태도는 특별한 것도 악랄한 것도 아닌, ‘중심’의 자리에서 미디어로 중계되는 ‘타자의 고통’을 보는 보통(?)의 무심함인지 모른다. 서울에서 살면서 안 건데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서울스러움’이란 아예 지역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엄청난 격차와 차별 자체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거기도 카카오 택시가 있니? 그런 대학도 있어? 어, 스타벅스도 있구나.’ 단언컨대 여기에는 좌우가 없다. 어쩌면 소위 진보나 좌파가 더 심각할지 모른다. 피상적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 말이다. 그들은 지방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들을 쉽게 ‘미개’나 ‘전근대’로 치부하기도 한다. 물론 중심이나 주류의 자리에 있어 갖는 무지와 무성찰은 물론 이런 ‘서울 대 촌’의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름 늘 노력하려 한다.

추석 연휴에 고향을 가니 지자체와 관변 단체들이 도배한 듯한 플래카드들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2030 세계박람회 유치, 미래 부산을 위해 마, 함 해보입시더!” 아마도 윤석열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부산엑스포 유치를 선택한 덕분인지, 부산의 일부 계층과 집권세력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동원령을 내린 모양이다. 하루하루 엑스포와 관련된 복잡한 뉴스가 부산발로 생산된다. 그중에는 미군이 70년 넘게 독점하며 심지어 생화학전 시료를 들여오던 부산항 8부두의 일부를 엑스포를 위해 이전할지도 모른다는 바람직한 소식이 있는가 하면, 기장에서 무리하게 열기로 했다가 소나기 같은 비판을 받고 철회한 BTS 공연 계획의 내막에 관한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부산에서 만난 어떤 이는 엑스포 유치가 북항 개발이나 가덕도공항 문제와 ‘확장적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비판적인 이들도 당연히 많다. 엑스포 유치는 전형적인 낡은 메가이벤트 개발 전략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검증된바 개최 효과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영어 상용 도시화’도 첨예하다. 당연히 한글 단체들과 일부 시민사회는 반대운동에 나섰다. 그런데 부산 토박이며 진보적인 구모룡 평론가 같은 이의 견해는 좀 다르다. 인구감소를 막고 미래적 해항도시의 혁신 과제의 하나로서 이를 사유한다. 부산이 점점 더 많아지는 외국인과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더 친화적인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영어 몰입 교육이나 영어패권주의의 일반적인 문제를 삭제하지 않는 복잡한 별론이 있다.

이처럼 부산이라는 지역이 앓는 상황은 다른 지역과 지역도시가 앓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좀 다르기도 하다. 계급, 젠더, 생태의 문제는 지역마다의 정치적 모순과 문화의 특수성에 따라 변형된다. 부산은 서울에 대해서는 ‘촌’이며 인구유출로 쇠퇴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천혜의 자연과 개성 강한 지역문화를 가진 도시다. 부산은 엑스포 같은 거라도 추진할 정도지만 대신 내부의 모순도 심하다.

그럼에도 ‘발전’이 정체돼 있고 청년들은 고향을 등지고 있다는 점은 다른 지방과 같다. 근본적인 이유도 같다. 수도권 초집중화와 서울에 의한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식민화다. 식민화는 ‘강남 흉내내기’며, 기득권들 앞에서의 열위화다. 그 위력이야말로 태풍보다 세게 모든 지역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부수고 내부의 모순을 심화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충청 이남 어느 도시를 가봐도, 시간이 멈춘 듯한 정체 아니면 반대로 자기파괴적인 막개발의 풍경이 가득하다. 당사자들은 연일 지역의 위기가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고 역설하지만, 지방대학의 위기나 ‘지방 소멸’도 여전히 ‘타인의 고통’이다. 이제 지역의 고통은 더 자주 미디어로 전시된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다’ ‘청년들이 떠난다’는 반복되는 말들은 오히려 낙인 효과를 증폭하는 것 같다. ‘지잡대 좀 없어지면 어떠냐’ 하는 식의 편안한(?) 인식과 함께, 이번에 윤석열 정권이 내놓은 ‘대학 적정 규모화’ 같은 기만적 정책들도 무릎을 꺾으려 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또 살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다와 농촌과 지역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흔한 ‘지방 담론’ 속에서가 아니라 그 살아 있는 실천으로써 지역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련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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