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시장경제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

2022. 9. 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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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고생했는데 왜 덜 주나'
동일노동에 대한 사람 생각은
주관적·감정적일 때가 많아
차별은 시장을 통해 시정해야
공정임금 강요는 언어도단
동일노동, 정확히 말하자면 동일가치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이 있다.

경제학자에게 이 원칙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노동이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동일한 임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가치는 시장에서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동일가치노동이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시장 외적인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깨지는 가장 대표적 시장 외적인 요인이 차별이다. 차별이 존재하면 똑같은 가치의 노동이 다른 임금을 받게 된다. 차별이 존재한다고 전제했지만 사실 이것이 차별의 정의다. 경제학에서 차별은 동일한 시장가치를 가진 노동이 다르게 보상받는 경우를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임금을 가지고 거꾸로 차별을 정의하기도 한다. 다른 임금과 차별은 동치가 아니므로 거꾸로 논리를 전개하면 오류가 된다. 다른 임금으로 차별을 정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부자 한 명 빼고 모든 사람이 차별당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상의 차이가 진짜로 차별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면 시장이 잘 작동하는지 봐야 한다.

2019년 3월, 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대표팀 급여와 포상금이 남자 대표팀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남자 대표팀이 2018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몇 달 후였다. 여자 선수들은 차별을 받은 것일까?

대표팀의 급여와 포상금은 선수들이 대표팀으로 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부상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프로에서 뛰고 있고 프로에서의 연봉이 남자 선수들이 월등히 높다면 이들을 대표팀으로 차출할 때 더 높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 맞는다.

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인위적으로 정하는 동일노동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하고 쟤하고 똑같이 고생했는데 왜 쟤는 나보다 임금이 높아라고 불평한다. 동일노동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니까 객관적인 기준으로 일한 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하면 같은 임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다. 똑같은 논리를 학교에 적용하면, 같은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으면 같은 성적을 주겠다는 주장이다.

차별의 문제는 끊임없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겠지만 법정 안에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시장경제에서 가치는 시장에서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동일가치의 노동이 동일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동일노동에 대해 차별적 임금을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차별을 하는 것은 인간이지 시장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이후 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의 임금 차이가 또다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이를 시정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다. 하청 근로자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곧바로 차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차별을 받은 것이라면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원하청 상생위원회를 구성한다든지, 공정임금을 강제하는 것과 같은 반시장적인 조치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거나 혹은 왜곡시킬 수 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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