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복장 자율화

입력 2022. 9. 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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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은행(World Bank)보다 보수적이다. 수장인 총재를 유럽 사람들이 계속 이어오고 있는 영향이 클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것은 복장이다. 대부분 직원들은 한여름에도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다닌다.

2016년 말 IMF 근무를 마치고 우리금융그룹으로 오면서 유사한 분위기를 느꼈다. 고객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 용모를 중시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배 임원이 "최 대표, 오늘 면도 안 했어요?"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매일 면도를 하면 피부가 아프기 때문에 크게 흉하지 않으면 2~3일에 한 번씩 했다. 30년 이상의 공무원 생활 중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니 다른 임원들의 용모나 복장은 깔끔 그 자체였다. 멀끔하게 면도하고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는 사람도 많았다. 나의 습관은 그때부터 바뀌었다.

그런 금융그룹에서 2020년 6월부터 직원들의 복장을 자율화했다. 은행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평상복을 입도록 허용한 것이다. 노조가 앞장선 탓도 있지만 MZ세대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내가 속한 연구소에서도 복장을 자율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정장을 입고 다니라고 주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공식화할 필요가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회사 차원에서 허용해 달라는 것이고 핵심은 청바지라고 했다.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유쾌하게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연구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복장이 눈에 띄게 편해졌다. 간부급 직원들도 정장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청바지 차림이 대세가 되었다.

복장 자율화는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직원들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중심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 여파로 금융그룹에서 직접 고객 상대를 하는 일이 급속하게 줄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지점보다 디지털이 서비스의 중심이 되면서 직원 용모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걱정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좋아졌다. 임원들은 전통적인 옷차림을 고수하는 이들이 많다. 또, 고객 서비스를 하는 금융회사가 자유로운 복장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도 여전히 있다.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보기에는 과거보다 훨씬 활기 있고 자유로워 보인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패션 감각이나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탓도 클 것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염원해온 규제개혁도 이런 것일 수 있다. 고민이 많더라도 과감하게 추진한다면 우리의 높아진 의식과 수준이 바람직한 성과를 이루어낼 것이다.

가을이 왔다. 곧 노랗고 빨간 단풍이 온 산하를 물들일 것이다. 나도 소명의식처럼 입고 다녔던 정장을 접고, 이 멋진 계절에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출근해야겠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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