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영빈관 소동' 어물쩍 넘겨선 안 된다
의사결정 시스템의 결함 드러나
의혹 규명하고 혼선 책임 물어야
대통령실 전면 쇄신 필요성 커져
8월 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고 내부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 여권에선 대통령실 전면 쇄신 목소리가 높았다. 윤 대통령도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대대적인 쇄신이 예상됐으나 결국 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바꾸고, 50여명의 실무진을 교체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렇게 마무리했으니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878억 영빈관’ 신축 철회 소동은 대통령실이 아직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 기능을 강화했는데 왜 이런 헛발질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경제 위기로 민생이 고통받고, 재정 긴축을 추진하는 마당에 거액을 들여 불쑥 영빈관을 신축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대통령실 이전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드러난 영빈관 신축 추진은 여론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대통령실은 “용산 이전 뒤 외빈 행사를 치러 보니 경호 비용과 시민 불편이 초래돼 영빈관 신축을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에서 나올 때부터 제기된 우려인 만큼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국민의힘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뒤늦게 영빈관 신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잊고 있는 듯하다. “50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윤 대통령의 공언을 뒤집는 사업을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해도 되나.
더구나 한나절 만에 ‘신축 불가피’에서 ‘철회’로 입장을 바꾼 대통령실의 오락가락 행보는 윤 대통령에게 영빈관 신축 계획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다. 대통령실이 이렇게 중요 현안을 충분한 내부 검토나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였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덕수 총리도 “몰랐다”고 답변했고, 대통령실 소수 참모와 경호처 정도만 알았다는 보도까지 나와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영빈관 신축 철회 소동은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야당은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대선 당시 “응, (영빈관) 옮길 거야”라는 발언을 문제 삼아 김 여사가 영빈관 신축을 지시했다는 공세를 펴고 있다. 야당은 “차라리 청와대로 들어가는 게 국민 혈세를 아끼는 일”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영빈관 신축 추진과 철회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다면 대통령실은 계속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참에 대통령실 전면 쇄신 요구가 나왔던 이유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연이은 인사 참사, 검찰 출신에 대한 과도한 중용, 김 여사를 둘러싼 여러 구설 등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대통령실 쇄신은 제기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근인(根因)은 내버려 둔 채 변죽만 울리는 처방을 내놨다. 그래서 지지율도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사고는 사고대로 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실의 정무적인 판단력이 부족하고, 내부 소통과 의사결정 구조도 결함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국정 쇄신, 비서실 쇄신은 5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 관련자 책임을 묻고 대통령실 업무시스템 재정비에 나서는 일대 쇄신에 착수해야 하겠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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