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한 아내가 고소" 숨진 남편의 글.. 포천경찰서에 항의 쏟아진 이유

최혜승 기자 2022. 9. 2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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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경찰서 전경 /뉴스1

최근 경기 포천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은 말 그대로 불이 났다. 2016년부터 운영돼온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6년 동안 90건에 불과했는데, 지난 16일부터 엿새 동안 1000개 넘는 글이 쏟아졌다. 게시판 개설 취지와는 달리, 특정 경찰관을 언급하며 경찰 수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인구 14만의 소도시 경찰서 홈페이지에, 이렇게 수많은 네티즌이 몰려들어 분노의 글을 남기는 이유는 뭘까.

포천경찰서에 이런 항의가 쇄도하기 시작한 것은, 14일 포천시 선단동의 한 창고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40대 남성 A씨가 이틀 전 남긴 인터넷 글에서 비롯됐다. 자신을 ‘3명의 자녀를 둔 42세 가장’이라고 밝힌 A씨는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혐의로 아내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그는 이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14년 동안 나 모르게 외도를 지속한 아내”를 그 이유로 언급했다.

A씨가 남긴 글에 따르면, 그의 아내는 지난해 12월 상간녀 소송에 휘말렸다. 외도한 남성의 부인에게 A씨 아내는 1000만원대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는데, A씨는 이 사실을 수개월간 모르고 지냈다. 지난 4월에서야 이를 알게 됐고, A씨는 그 뒤 아내와의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자 A씨에게 고소장이 한 통 날아들었다. 아내가 가정폭력 혐의로 그를 고소한 것이었다. 포천경찰은 A씨에게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통보했다. A씨가 경찰서로 불려간 건 5월 2일이다. A씨는 “아내 외도 사실을 알게된 후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냈고, 아내를 때린 사실이 없었다”며 “스스로 떳떳해 조사를 받으러 갔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러나 담당 수사관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을 “겁박하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초 “아내를 때리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폭행이 있었다는 시간대에는 자신이 집에 없었다는 것이다. 통장 기록과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이 그의 알리바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수사관은 “폭행 여부와 관계없이 아내 말로만 기소가 된다” “인정을 하면 아내 기분이 풀려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이 말을 듣고 고소 내용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 조사가 있은 지 일주일 뒤, A씨는 또다른 고소장을 받아들게 됐다. 고소인은 종전과 같았지만 혐의가 달랐다. 이번에는 아동학대 혐의였다. A씨는 아내를 같은 혐의로 맞고소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A씨는 이 사건 진행 과정에서도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아내가 처벌받게 도와달라”며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이 글을 보실 때쯤 전 죽었을 겁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이 글이 게재된 지 사흘 뒤인 지난 15일, 보배드림 게시판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A씨 글을 본 한 네티즌이 A씨의 극단적 선택을 우려해 국민신문고에 관련 내용을 접수했는데, 이미 전날 오전에 A씨가 변사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A씨 변사 사건은 그 뒤 경찰 확인을 거친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했고, 네티즌들은 A씨의 ‘가정폭력’ 혐의를 수사한 포천경찰서에 민원을 퍼붓기 시작했다.

해당 게시판에는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약 1000개의 글이 올라왔다. A씨의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근거로 ‘무고한 사람이 사망했다’ ‘수사에 대해 해명하라’ 등의 항의글을 남겼다. 담당 수사관의 실명을 꺼내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도 있었다. 포천경찰서는 일부 비난 수위가 높은 글에 대해서는 삭제 조치를 하고 있는데, 그 뒤 게시판에는 게시글을 지우지 말라며 항의하는 글까지 도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포천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올라온 글 / 포천경찰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설명은 A씨의 주장과 다르다. A씨가 가정폭력 혐의를 시인해 수사가 종결됐다는 입장이다. 이미 검찰에서도 A씨 가정폭력 혐의가 인정된다며 지난 6월 구약식(벌금) 150만원을 처분했다는 것이다. 포천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과 가정 폭력 사실을 인정한 A씨의 진술과 보강 증거 등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에서 A씨에 대해 벌금 처분을 했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이 자신을 회유하고 겁박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담당 수사관이 억울해 한다”며 “해당 경관이나 유족을 비방하거나 부적절한 글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A씨가 사망하면서 그가 피고소인으로 된 사건들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다만 A씨가 생전에 아내를 아동학대 혐의로 맞고소한 사건은 현재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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