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심영희 교수 부부 “매일 3만보 걷고 체조, 희소 신경병 이겨냈죠”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2. 9. 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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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동 증후군 극복기
한상진 서울대, 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부부가 서울 반포 집 주변 공원을 활기차게 산책하고 있다. 아내 심 교수는 이상운동 증후군에 걸려 경련과 마비로 누워만 지냈으나 꾸준한 재활로 이제 혼자서도 3만보를 걸을 수 있게 됐다. /김지호 기자

한국 사회 문제를 통찰하고 해법을 제시했던 저명한 학자 부부가 기능성 이상운동 증후군이라는 희소 신경질환과 투병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는 극복하는 이야기를 내놨다. 책 제목은 ‘근육이 마구 떨리는데 마음의 병이라니!’(중민출판사 펴냄)다. 목 뒤 근육에 온종일 경련이 오고 팔이 굳고 마비가 되는데, 원인도 모르고, 뚜렷한 치료법도 모른 채, 그 고통을 견뎌내야 했으니, 나온 말이다.

투병과 간병 이야기 주인공은 한상진(77)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심영희(75) 한양대 법학과 명예교수 부부다. 환자는 아내 심 교수, 간병은 남편 한 교수 몫이다. 심 교수는 한국여성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 교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냈다. 둘은 1970년대 서울대생 일 때 만나 결혼했다.

5년 전 어느 날 아내 심 교수 머리 뒤쪽이 떨리기 시작했다. 팔의 감각도 떨어지는 듯했다. 뇌졸중인가 해서 뇌 MRI를 찍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목이 뒤틀릴 정도의 경련이 오고,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를 찾은 결과, 기능성 이상운동 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뇌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으나, 신경 신호 문제로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나오는 질환이다. 잠을 자는 시간 빼고 계속 목에 경련이 오고 팔이 딱딱해져 마비 상태가 됐다. 그걸로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경련 시간이 더 늘었다. 온종일 경련 속에서 누워 지냈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투병과 간병이 시작됐다. 뚜렷한 치료약이나 치료법이 없기에 막막하기 그지없었다고 한 교수는 전했다. 미국서 온 운동치료사에게 진정 호흡법을 익혔다. 노 젓기 동작이 팔 근육 경직과 마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을 터득하고 남편, 아들, 딸, 방문 요양보호사를 통해 체조와 운동에 매달렸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좋아지자 집 주변 공원 걷기에 나섰다.

한 교수는 “하루 세 번 밖으로 나가 지칠 때까지 걷고 또 걸어서 하루 3만보를 걸었다”며 “처음에는 부축해서 걷다가 수 개월 후에는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함께 걷고, 아내의 발을 씻겨 줬다. 걷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나무와 꽃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한 교수는 전범석 신경과 교수에게 이상 증세 상태 보고를 수시로 하여 재활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체크했다.

그렇게 일년 이년이 지나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늘어나고 경련도 슬슬 줄어들었다. 부부는 이 과정을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심신이 회복됐다. 최근에는 투병 경험을 알리는 북콘서트도 열었다. 한 교수는 “명색이 사회학자인데, 우리와 같은 처지의 막막한 심정의 환자들에게 투병과 간병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가족의 지지가 이상운동 증후군을 극복해 나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다”며 “한국도 가족 간병이 잘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부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중민재단은 기능성 이상운동 증후군 환자와 가족들을 규합하여 환우회를 만들고, 서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며 많은 환자가 치유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능성 이상운동 증후군

뇌에 구조적인 변화는 없으면서 비정상적이고 자발적이지 않은 움직임이나 떨림이 나오고, 이상한 신체 자세가 형성될 때를 말한다. 뇌에서 내보내는 신경 신호 전달 방식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어서, 심인성 운동 장애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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