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충남대 교수 '쓴소리' "기초 법학 외면하는 로스쿨, 이대로 가면 '법 기술자'만 양산"

윤희일 선임기자 2022. 9. 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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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학 충남대 교수가 오는 23일 충남대에서 개최 예정인 포럼 팸플릿을 들어 보이면서 “이번 포럼은 조선과 로마의 법을 통해 동서양의 법률체계를 비교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학 분야의 기초 학문과 인문학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법조인이 양산되면, 결국 ‘법 기술자’만 판을 치게 되고 진정한 ‘법률가’는 사라질 겁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교육 바로잡기’에 나선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1)는 이른바 ‘법 기술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로스쿨 교육 시스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지난 13일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현재 로스쿨이 국내 법조인 양성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교육 현장은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왜곡된 법학 교육’의 대표적인 사례로 법철학·법사학·법제사 등 법학 분야의 기초 학문과 인문학을 배우려는 학생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을 들었다. 그는 “국내의 상당수 로스쿨에서 이런 기초 법학 과목의 강의를 개설해도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는 경우가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배우려는 학생이 줄어들면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자도 감소해 기존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새로운 교수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합격률 매달려 ‘수험법학’만 전념
법철학 등 폐강·교수 퇴임 악순환
인문적 소양 갖추지 못한 법률가
인체해부학 모르는 의사와 같아

손 교수는 이 같은 실태에 대해 “기초 법학은 사라지고 ‘임상 법학’만 남는 상황”이라고 국내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이어 “의학 분야와 비교한다면, 의대생이 인체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세균학 등 기초의학은 배우지 않은 채 곧바로 성형외과 등의 지식만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로스쿨에서 힘을 쏟는 임상 법학조차도 깊이 있게 진행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로스쿨 측이나 학생들이 모두 ‘수험법학’, 심하게 말하면 ‘문제풀이 수험법학’에 전념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상황은 졸업생의 합격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로스쿨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예를 들어 법은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가 표출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법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법철학 등 기초 학문은 무시하고 판례 등 결과물에 대해서만 피상적으로 접근해 법조인이 되는 경우 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법학의 기초 학문과 인문학 분야의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변호사가 되면 무조건 돈을 추구할 것이고, 검사가 되면 권력만 따르려 할 것이며, 판사가 된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형식적 법 논리만으로 기존 판례를 따르는 판결을 쏟아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판사는 재판을 받는 사람이 지거나 이기거나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고 감동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그런 판결을 내놓을 수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법사학·법제사·법철학 등 기초 법학을 로스쿨 학생들이 접할 기회를 늘리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

‘법사학 포럼’ 열어 시야 확장 기대
유튜브로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도

충남대 법률센터장인 그는 2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충남대 중앙도서관 원형서가에서 ‘조선과 로마의 법’이라는 주제의 포럼을 개최한다. 조선과 로마의 법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법률 체계를 사형제도·토지매매·상속 등 다양한 분야별로 비교해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손 교수는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포럼을 통해 법사학에 관한 지식과 시야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면서 “공무원과 지역주민들도 포럼에 참석할 수 있도록 유튜브로 생중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법철학·법제사 등 기초 법학 분야에서 다양한 포럼을 열어 로스쿨 학생 등이 더 깊이 있고,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손 교수는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충남대 로스쿨 창립 멤버로 참여해 법학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또 유튜브 ‘더손채널’에 만든 <손종학 교수의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코너를 통해 법률의 대중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글·사진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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