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대책 '건물 집착'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김현수 기자 2022. 9. 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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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사업 첫해 508건 전수조사
경북 의성군 청춘구 행복동 3기에 참여하면서 의성살이를 시작한 고명진 퍼즈유어셀프(pause your self) 대표(32)가 지난 20일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자신의 ‘티 라운지’에서 직접 개발한 홍차를 우려내고 있다. 김현수 기자
본지·천준호 의원실 공동분석
‘○ ○ 센터’ 건설 등 시설 치중
교통 인프라 투자는 등한시
가장 많은 ‘워케이션’ 사업은
정주 인구 늘리는 것과 거리

경북 의성군 안계 전통시장에는 ‘티 라운지’가 있다. 차를 즐기며 쉬어가는 공간이다. 의성에서 키운 사과를 활용해 만든 차를 낸다. 서울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던 고명진씨(32)가 가게를 운영한다. 그는 “잦은 야근에 번아웃이 왔었다”며 “지난해 3월 ‘의성 살아보기’ 3기로 참석했다가 의성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의성군은 청년창업 한 팀당 1억원씩을 지원한다. 고씨도 동업자와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의성 안계면에는 시골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미술관, 여관을 탈바꿈해 만든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의성 밖 청년들이 일군 사업장이다.

의성군에는 5만477명이 살고 있다. 인구 크기 순으로 순위를 매기면 의성군은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168번째다. 이곳에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 의성은 2017년부터 ‘의성 살아보기’ ‘도시청년시골파견제’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참가자 160명 중 103명이 의성에 전입신고를 했다.

소기의 성과였지만 도시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의성 주민 A씨는 “의성군청 공무원의 30~40%는 대구에 살 만큼 인프라 부족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의성에 왔다가도 결혼·출산이 임박하거나,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돌아간 청년들이 많다. 창업 말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것도 남은 숙제”라고 했다.

의성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소멸기금) 배분액을 가장 많이 받은 기초지자체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6일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인구소멸 위기에 있는 107곳을 분류했다. 행안부는 이들 지자체가 제출한 각종 사업계획을 심사해 A~E등급으로 나눠 발표했다. 기존 청년정착 사업과 연계해 ‘워라밸복합문화센터’ 등 7개 사업을 제출한 의성군은 A등급을 받았다. 기초지자체별로 1~8개 사업을 제출했고, 행안부는 복수의 사업을 종합평가했다. 소멸기금은 등급에 따라 2년 동안 적게는 28억원, 많게는 210억원씩 차등 지급된다.

행안부는 앞으로 연 1조원씩 10년간 소멸기금 10조원을 운용하면서도, 뚜렷한 이유 없이 평가 결과와 세부 사업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올해 제출된 508건의 사업명과 기초지자체별 등급을 확인했다. 어떤 사업이 많았는지, 향후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짧게 머물더라도 붙잡겠다”

기초지자체가 가장 많이 뛰어든 사업은 문화·관광(130개)이었다. 문화·관광 사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장기 거주’ 유도다. 일과 휴가의 합성어인 ‘워케이션’(Work+Vacation)이 들어간 사업만 14개다. 재택근무가 늘어났으니 타지에 머물며 일하는 이들을 붙잡겠다는 취지다. ‘살아봐요 장항워케이션 워매’(충남 서천·C등급), ‘워케이션 거점 신중년 놀이터 조성’(경북 영천·B등급) 등이 사업목록에 있다.

워케이션 혹은 귀농한 인구를 유치해 장기거주를 유도하려는 시도는 행안부의 인구 집계 방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행안부는 이달 초 거주지 중심의 주민등록인구 외에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거주지와 다른 지역에서 학교·직장을 다니거나 일정 기간 ‘관광·휴양지를 방문해 체류하는 경우’ 생활인구에 포함될 예정이다.

■평가 쉽고 자산 남는 ‘건물 신축’ 많아…교통 사업은 9개로 최소

문화·관광 사업이 130개로 최다, 일자리 사업이 121개로 뒤이어…청년 사업은 74개
인구 유입 위한 교통 인프라 확충은 외면…개별 지자체를 넘어 공공이 나서야 해결
지자체 간 경쟁 유도는 ‘연계·협력’ 강조와 배치…유사·중복 사업 적지 않아 문제

사업명에 ‘농산촌 체험형 생활인구 지원’(강원 평창·B등급), ‘폐교를 활용한 생활인구 유입(강원 삼척·C등급) 등 ‘생활인구’가 들어간 사업도 5개 확인된다.

출생률은 떨어지고 인구 유출마저 발생하는 기초지자체 입장에서 인구 자연증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B연구위원은 “외부에서 유입해 중·장기간 머무는 인구라도 끌어모으는 차원에서 ‘워케이션’식의 사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주 인구가 아닌 데다 워케이션이 가능한 노동자가 많지 않은 점은 워케이션 사업의 약점으로 꼽힌다. 반면 지역에선 정착률만 따지지 말고 ‘농촌 이해를 높여 납세자로서 농촌 지원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육성하는 과정’(경북 도시청년 농촌살아보기 확대추진연구·2020년)으로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관광 다음은 일자리(121개)였다. ‘산촌 청년창업특구 프로젝트’(충북 괴산·B등급)처럼 창업(16개)이 키워드로 들어간 사업이 많았다. ‘식물 바이오 소재 생산거점 구축’(경기 연천·E등급), ‘이모빌리티 특화농공단지 조성’(강원 횡성·C등급)과 같은 신사업을 하겠다는 지자체도 있었다.

기초지자체는 노인(36개)보다 청년에 비중을 둔 사업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청년 인구 유출을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업명에 ‘청년’이 들어간 사업만 74개였다. 전북 순창(B등급)은 ‘맞춤형 청년창업 활성화’ ‘순창 청년허브 구축’ 등 6개 사업을 모두 ‘청년’을 주제로 만들어 제출했다.

손에 꼽지만 이주노동자 주거지원 사업도 있었다. 열악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자 일부 기초지자체에서 직접 나섰다. ‘논산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기숙사 조성’(충남 논산·C등급), ‘외국인 주민 기숙사 건립사업’(경기 포천·C등급)이 드문 사례다.

■왜 ‘센터’는 많고 교통은 적을까

행안부는 소멸기금으로 유형 자산을 남기는 사업을 지자체에 추천했다. 이를 반영해 각 지자체는 새로 건물을 짓는 등의 하드웨어 구축 사업을 다수 제출했다. 사업명에 ‘센터’가 들어간 것만 모아보니 62개였다. 주로 ‘무주군 청년센터 조성’(전북 무주·B등급), ‘욕지 어울림문화센터조성’(경남 통영·E등급)처럼 청년센터, 문화센터였다. 인구감소위기대응센터(대구광역시), 인구활력센터(경북 영주·C등급) 등 인구소멸 대응센터를 만들려는 지자체도 확인됐다.

건물 신축은 행안부·지자체 모두에 안전한 길이다. 행안부 입장에선 ‘소프트웨어’ 정책보다 유형 자산이 있으니 정량평가가 수월하다. 지자체는 사업이 실패해도 자산이 남는다. 지자체장 치적사업이나 주민 숙원사업용으로 활용하기도 좋다. 한 광역시 관계자는 “기초지자체는 시장이나 군수의 영향력이 강해 인구 유입책보다는 센터 건설 등 지역주민 민원용 사업을 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건물을 짓고 난 뒤 활용도가 떨어지면 애물단지가 된다는 것이다. 지자체 재정 여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새 시설을 관리할 공무원은 한정적이다. 유지·관리비 지출 또한 부담된다. 예를 들어 지자체의 대규모 스포츠시설은 대부분 매해 큰 폭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멸기금 사업에도 ‘스포츠 빌리지 조성’(경남 고성·C등급), ‘에코 파크골프장 조성’(경남 의령·D등급) 등이 담겼다.

건물 신축에 소멸기금이 쏠린 반면 교통 관련 사업은 외면받았다. 소멸기금 사업에선 ‘교통’이 단 9개로 가장 적었다. 강원 정선(B등급)의 버스공영제 외에 눈에 띄는 정책이 없었다. 나머진 ‘통행로 확장’(경남 밀양·B등급), ‘인도교 설치사업’(강원 철원·C등급)처럼 소규모 도로 정비 사업뿐이었다.

충남 논산시는 주거와 일터를 가까이에 두는 ‘논산 산단 청년행복주택 조성’ 사업을 제출했다. 교통 개선 사업은 아니지만 교통이 여의치 않은 지역 사정을 고려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인구 유입의 핵심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대중교통 등 교통 인프라 확충이다.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건물에 집착하기보다는 대중교통처럼 보편적 기본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유도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교통이 불편하면 출퇴근이 어렵고 교류도 번거롭다.

수도권 외 지역은 인구가 적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교통사업은 수익성이 떨어진다. 공공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다만 교통은 광역단위에서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개별 기초지자체의 노력만으로 큰 개선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각자도생’식으로 사업계획을 제출한 기초지자체가 소멸기금을 교통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쟁과 연계·협력을 동시에?

행안부는 소멸기금을 배분하면서 ‘연계·협력’과 ‘기초지자체 간 경쟁’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소멸기금 배분액이 기초지자체별로 크지 않은 만큼, 기존 사업에 소멸기금을 보태 쓰는 형태의 사업계획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기초지자체 간 경쟁 유도는 행안부가 중요성을 강조한 연계·협력과 배치된다. 기초지자체가 제출한 사업 508건 중 유사·중복 사업이 적지 않다. 적어도 인접 지역 간에는 협력을 해야 시너지가 나는데, 각 기초지자체가 힘을 합쳐 제출한 사업은 없었다.

지방행정연구원은 지난달 발행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진단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사업 수주를 위한 경쟁 심화로 지역 내·지역 간 협력과 네트워크 형성이 저해됨”이라고 밝혔다. 경쟁을 유도한다면서 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외부 청년 유입을 목표로 막연하게 ‘청년 창업’ ‘청년 주거’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지역 청년들이 정주할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소멸기금 평가에 참여했던 C박사는 “지역 고교생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사해 그들이 정주하게 할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는 주거·일자리 사업을 시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지자체별 지원액이 적어 사업 선택이 제한적이라는 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실현 가능하고 구체적인 사업을 제출한 기초지자체에 배분액을 밀어줘야 한다는 견해와, 소멸기금의 파이를 키워 나눠줄 분배액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모든 기초지자체는 생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며 “소멸기금을 더 늘려 각 지자체에 돌아가는 예산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진·강은·김현수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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