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국가안보 우선시대'로 합류해야

2022. 9. 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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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때문에 난리가 났다. 우리 산업통상 고위관료들의 미국행이 줄을 잇고 있다. 겉으로는 세계적 인플레 상황에서 미국민의 생활안정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를 핑계로 차세대 자동차 분야의 역내 공급망을 확보하여 미국의 국가안보를 보호하려는 정책이다.

IRA 13401조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세액공제 수혜조건을 정하고 있다. 북미지역에서 최종조립된 전기자동차를 대상으로 하여, 배터리의 핵심광물이 미국 내에서 추출 및 처리된 것일 것과 배터리 부품의 50%(2024년)~100%(2029년)가 미국 내에서 제조 또는 조립될 것도 요구하고 있다. 북미지역에서 생산된 광물과 미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을 사용하라는 말이고, 북미지역에 공장을 세워 최종 생산하라는 요구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최대 7500 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이런 혜택을 마다하고 한국산 전기자동차를 구입할 미국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구나 '우려외국기업'(foreign entity of concern)에 의해 조달된 광물이나 부품을 조금이라도 사용한 전기자동차라면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니, 중국 및 러시아 진출 기업들을 견제하는 의미도 있다.

미국이 국가안보 우선주의 차원에서 통상문제를 접근한 것은 트럼프행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됐다. 2017년 4월 미 대통령 행정명령에서는 '철강, 알루미늄, 차량, 항공기, 조선 및 반도체 산업이 미국 제조업과 방위산업의 핵심적 기반'이므로 이를 보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2017년 7월 행정명령에서는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제품'의 공급망이 수입에 의존하면 유사 시 대응능력을 떨어뜨리고 비우호적 국가들의 개입 가능성을 증대시키므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이미 핵심 국가안보 산업으로 명명되어 버린 부문에 대한 보호를 철회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트럼프 노선에 보건 및 환경 이슈를 접목하고 인권문제를 추가해 넣어 지지 기반을 넓혔다.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 분야의 보호무역조치가 강력히 시행되고 있는 마당에 다음 표적이 자동차 분야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아마추어적이었다. 이미 법률이 8월 16일부로 시행된 마당에 뒤늦게 방미외교라는 보여주기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는 대만, 일본, 한국과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Chip4) 구상과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연계해서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통상교섭본부장은 선언했다. 미 의회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미 제정한 법률을 도대체 행정부와의 반도체 협상을 통해 어떻게 대응해나가겠다는 것인가.

전기자동차 보조금이 한미 FTA 위반이라는 입장도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국가간 차별, 투자분야의 이행요건 부과, 그리고 금지보조금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한미 FTA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국 측이 반영해 넣은 '국가안보 예외조항'이 버티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취하는 안보조치들이 국가안보 예외로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 한미 FTA는 이러한 시점 제한 없이 "자국의 필수안보이익의 보호에 필요하다고 자국이 판단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FTA상의 어떤 의무 위반도 정당화해주는 조항이 존재한다. 우리측의 국제법 위반 주장이 우리 스스로 체결한 FTA에 의해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미국의 국가안보 우선주의는 철강, 알루미늄, 차량을 거쳐 반도체 분야로 진군하고 있다. 선박과 항공기 분야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세상은 국가안보라는 개념을 요술방망이처럼 활용해 모든 대외정책을 합리화시켜버리는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개념은 정립되어 있는가. 미국 주도의 Chip4 및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이든, 중국이 맞대응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든지 간에 한국 스스로 정의하는 핵심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 협력하거나 대응해나가겠다는 확고한 방향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초강대국 틈바구니 속에 있는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일관된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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