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홀로 왔다 가지만, 혼자일 수 없는..

2022. 9. 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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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한평 남짓 작은 쪽방에서 사망. 집 주인 떡국 한 그릇 전해주러 갔지. 얼어붙은 눈물자국 묻은 가족사진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시신 발견.'

지난 6일 초연 개막한 창작뮤지컬 '어차피 혼자'의 넘버 '한두줄로 요약할 수 있을까'에 등장하는 가사다. 남구청 복지과에서 무연고 사망을 담당하는 공무원 독고정순은 '쪽방에서 사망, 건물주 시신 발견'으로 짧게 기록하면 되는 사망 고지서에 사연을 덧붙인다.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다른 이의 죽음을 잘 처리하고자 오로지 죽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독고정순은 또 다른 넘버 '장마가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를 통해 "홀로 남은 방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떠나가는 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떤 목소리로 어떤 얼굴로 웃었을까, 울었을까, 멈출 순 없었을까, 그때 문을 두드렸다면 어땠을까"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는 비단 독고정순뿐만 아니라 뉴스에서 고독사 관련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 우리가 갖는 공통 질문이다. 그리고 "막을 순 없었을까"라며 미흡한 사회적 대책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가구는 지난달 기준 973만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41%에 달한다. 2018년 808만가구(36.6%)에서 매년 증가 추세다. 가족과 이웃 등 사회적으로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인구도 매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도별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을 보면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2017년 2008명에서 2018년 2447명, 2019년 2656명, 2020년 3136명, 2021년 3603명으로 점차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6월 기준)에만 2314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60세 이상 연령층의 경우 2017년 1132명에서 2021년 2359명으로 사망자가 두 배 이상 급증했다. 40대 미만 연령대에서도 최근 5년간 403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40대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부터 200명대를 넘어섰다.

고립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복지 사각지대가 젊은층과 장년층으로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고독사 예방 대책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실태조사를 하도록 한 내용의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통과됐다. 복지부는 올 8월부터 총 17억6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들여 서울, 전북 등 9개 지자체와 고독사 예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독사 위험가구에 일정 기간 가전제품을 사용한 흔적이 없으면 자동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플러그'를 설치하거나 기존 사회복지 공무원이 대면으로 안부를 물어보는 등 단순한 안부확인 수준의 프로그램만으로는 매년 급증하는 고독사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전국 차원에서 고독사 현황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복지부와 지자체뿐 아니라 유관기관들이 고독사 예방을 위해 정보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의 고독사 위험자 지원통합시스템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뮤지컬 '어차피 혼자'는 2013년 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마인즈' 리딩 공연으로 처음 공개됐다. 당시 공연을 인상적으로 본 송혜선 PL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번 제작을 결심하면서 "나홀로족·1인가구가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지만 문득 '우리는 정말 괜찮은 걸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이 시점에 관객들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9년 전에도 이미 사회적 문제였던 고독사가 1인가구 증가, 고령화, 코로나19 등으로 그 심각성이 더해졌다. 작품 속 마지막 수수께끼 '혼자 왔다 혼자 가지만 혼자일 수 없는 것'에 대한 답은 '사람'이다. 어차피 혼자지만 당신의 옆에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는 걸 사회가 끊임없이 상기시켜줘야 한다. 이제 정부가 고독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연령별·지역별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갖추는 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올해 말 나올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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