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룰라 vs 막말 대통령..브라질 대선 변수는 '복음주의'
'무능·막말' 대통령 보우소나루에
선거 막판 지지율 10%p 넘게 앞서
극우 정치인 보우소나루의 재선이냐, 12년의 간격을 뛰어넘는 중도 좌파 룰라의 복귀냐.
남미 최대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브라질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다음달 2일(현지시각)로 다가옴에 따라, 앞으로 4년간 국정을 이끌 지도자가 누구냐를 놓고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 선거 분위기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67·자유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76·노동자당)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이날 1차 대결에서 50% 이상 지지를 얻는 후보가 없으면 같은 달 30일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부가 갈린다.
양자간 판세는 룰라 전 대통령이 여유있게 앞서는 형국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여론기관 ‘다타폴랴’(Datafolha)의 조사 결과를 보면, 룰라는 45%의 지지를 받아 보우소나루(33%)를 10%포인트 넘게 따돌렸다.
육군 대위 출신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018년 전국이 부패 스캔들로 떠들썩할 때 강력한 부패척결과 깨끗한 정치 등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임기 내내 부적절한 막말과 끊임없는 분열, 갈등, 무능 등을 드러내며 신뢰를 잃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대처는커녕 오히려 근거 없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시켜 큰 혼란을 일으켰다.
그는 대유행 기간 동안 코로나19를 “가벼운 독감”이라고 무시했다. 초기 단계부터 지방정부의 격리와 봉쇄 등 강력한 방역대책에 반대했고, 이에 따르는 시민들을 향해선 “바보, 멍충이”라고 비난했다. 또 말라리아 치료제로 코로나19에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예방·치료제라고 권유했다. 반면,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선 여자가 맞으면 수염이 날 수 있다는 등의 비과학적 발언으로 불신을 부추겼다. 그 결과 브라질은 국민 3450만명이 감염되고 68만4천명이 숨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는 거침없이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여성 의원에게 성폭행을 당할 가치도 없다는 막말로 빈축을 샀고, 최근 대선 토론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여성 언론인의 질문에 “너는 잘 때 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한테 반한 게 틀림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의 52%를 차지하는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보우소나루와 룰라의 지지도 격차는 29% 대 46%로 20%포인트 가까이 벌어져 있다.
그러는 사이 경제 상황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곤두박질쳤다. 식량을 포함한 물가는 두자릿수로 치솟아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끼니 걱정을 한다는 브라질 국민은 2013년 23%에서 2020년 말 55%로 급증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14년 이래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최근 에너지 관련 세금을 깎아주고 빈곤층에 매달 120달러(16만7천원)를 지원하는 때늦은 복지정책으로 서민층 표심 잡기에 나섰으나, 아직 지지도에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룰라는 2003~2010년 대통령 재임 기간 철광석·옥수수·콩 등 원자재 수출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마련한 재원으로 강력한 진보적 사회프로그램을 실시해 빈곤층의 소득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이런 업적으로 2009년 퇴임 전 무려 80%에 이르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근 룰라의 지지율이 쾌속 질주하는 데는 두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린 재임기간의 실적 차이가 바탕에 깔린 것이다.
룰라는 퇴임 뒤 2017년 브라질 사회를 뒤흔든 대형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18개월 복역한 뒤 풀려났으나 대선 출마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의 무죄 취지의 확정판결로 극적으로 출마의 길이 열렸다.
룰라가 이런 정치적 어려움에도 대권을 다시 거머쥐는 데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보우소나루의 거듭된 막말·무능·실정에 실망한 광범한 정치세력이 결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대선에서 경쟁자였던 제라우두 아우크밍은 이번 대선에서 룰라의 러닝메이트로 참여할 예정이고, 유명 유튜버 펠리페 네토 등 룰라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도 지지에 나서고 있다. 룰라는 “내가 현직을 떠나 있던 12년 동안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정책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며 이들 진보적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복원을 다짐했다.
그러나 승부를 속단하긴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브라질 사회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신흥 복음주의 개신교의 표심 때문이다. 복음주의는 성경을 유일한 도덕적 근거로 삼고 이른바 ‘거듭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 개신교 세력을 일컫는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인 나라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시골에서 도시로 대량 인구이동이 일어나면서, 가난한 도시 이주민을 대상으로 복음주의가 급속히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현재 2억1300만 브라질 인구의 31%가 복음주의 신도들로 추정된다. 아직 가톨릭이 51%로 더 많지만, 2032년이면 복음주의 개신교도와 가톨릭 신자의 수가 같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복음주의 개신교의 급속한 성장이 브라질의 정치·이념 지형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이런 복음주의 개신교의 신도이다. 그는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2018년 대선 때도 그는 임신중지와 동성애 금지 등 보수적인 가족의 가치를 강조해 복음주의 신도로부터 7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는 집권 뒤엔 많은 복음주의 신도들을 정부 각료로 임명했고, 얼마 전엔 대법관에도 임명했다. 보우소나루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좌파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며 이번에도 복음주의 세력의 몰표를 기대하고 있다.
룰라는 가톨릭 신도이다. 그는 올초 임신중지 문제에 대해 종교적 이슈가 아니라 공중 보건 이슈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가 복음주의 개신교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도들의 표심이 일방적으로 보우소나루 쪽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이미 에리카 스미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는 “이번엔 그들도 단순히 보수적인 가족의 가치뿐 아니라 보우소나루의 경제 관련 성과나 코로나19 대응 방식 등에 대해서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5일 ‘다타폴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복음주의 개신교도 사이에서는 보우소나루의 지지도가 49% 대 32%로 룰라를 앞서지만 4년 전만큼 일방적이진 않다.
보우소나루가 대선 결과에 승복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그는 틈만 나면 브라질의 전자투표 제도에 대해 아무 근거도 없이 “투개표 부정의 소지가 있다”며 제도 변경을 요구해 왔다. 대법원이 “전자투표 제도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하자, 대법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등 사법부와도 갈등을 빚었다. 심지어 2018년 대선 결선에서 승리했을 때도 “1차 투표에서 이겼어야 한다”며 선거부정을 주장했다.
이런 태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전 투·개표 부정 가능성을 언급한 뒤 선거에서 패배하자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해 1월6일 지지자들의 의회 난립을 방조한 사례를 연상케 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보우소나루가 패할 경우 브라질에서도 미국과 같은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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