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정경심 사건과 김건희 사건이 닮은꼴?..쉽게 알아보는 도이치모터스 의혹
'돈과 계좌를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겼던 건 사실이지만, 맡겨놓은 내 계좌가 주가 조작에 쓰이는 줄은 몰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여 의혹에 대해 김건희 여사는 이런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혹의 핵심은 '주가 조작이 벌어지는 걸 과연 김건희 여사가 몰랐을까?'입니다.
왜 이런 의문이 제기될까요?
그 이유를 살피다 보면, 김건희 여사에 대해 지금 제기되는 의혹이 과거 정경심 전 교수에게 제기됐던 의혹과 놀랍도록 닮은꼴이라는 사실에 이르게 됩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이란?
검찰은 지난해 12월에 이 회사 대표 권오수 회장, 그리고 권 회장의 의뢰를 받아서 주가 조작 실무를 한 것으로 지목된 일명 '선수' 이 모 씨 등을 주가 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주가 조작 사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이 회사 주가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겁니다.
'전주(錢主)' 김건희?
'전주', 속칭 '쩐주'라고 하는 이 말은 "사업 밑천을 대주는 사람"이란 뜻이죠.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려면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일 자금이 필요한데, 이 자금을 대주는 사람을 보통 '전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주가 조작 관련해 자금을 대는 '전주'가 모두 처벌받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주가 조작에 쓰이는 걸 '전주'가 알고 있었는지가 죄가 되고 안 되고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김건희 여사 "몰랐다"
지난해 10월,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에서 김건희 여사 계좌 내역을 공개하면서 이런 주장을 했는데, 투자 전문가라고 소개받은 이 모 씨에게 2010년 1월부터 5월까지 주식 계좌를 운용해 투자해달라고 맡겼던 것뿐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 이 씨가 김건희 여사 계좌를 이용해 했던 주식 거래들을 검찰은 주가 조작 시도라고 보고 있더라'는 입장이었죠.
[윤석열 대통령 (2021년 10월 1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중) : (주가 조작 선수 이 모 씨) 이 양반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라고 해서 어? 이 양반한테 위탁관리를 좀 맡기면 괜찮을 것이다, 우리 그런 거 많이 하지 않습니까? 골드만삭스 출신이라고 하는 게 실력이 있어서…. 그런데 (2010년 1월부터) 한 네 달 정도 맡겼는데 손실이 났고요, 그 도이치모터스만 한 것이 아니고 10여 가지 주식을 전부 했는데 손실을 봐서 저희 집사람은 거기서 안 되겠다 해서 돈을 빼고 그 사람하고는 절연을 했습니다.]
정경심 사건과 닮았다?
김건희 여사가 / 주가 조작 시도가 진행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 자신의 돈과 주식 계좌를 / 주가 조작을 시도하고 있던 이 모 씨라는 인물에게 맡긴 것인가?
이게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김건희 여사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건 정당한 걸까요? 이 사건과 구도가 아주 흡사한 다른 사건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이유와 비교해 분석해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 관련 의혹입니다.
정경심 사건-김건희 사건, 세 가지 닮은 점
첫째, 정경심 전 교수가 주가 조작을 시도한 코링크PE 측의 '전주' 역할을 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조범동이라는 사람이 코링크PE라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만들어서 주가 조작을 주도했는데, 코링크PE 설립 자금이 정경심 전 교수에게 빌린 돈이었고, 또, 코링크PE가 조성한 펀드에 정경심 전 교수 측이 거액을 투자했는데 이 돈이 결과적으로 주가 조작에 동원됐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가 조작 주범과 정경심 전 교수의 특수 관계입니다. 주가 조작을 주도한 코링크PE의 조범동 씨가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였고요, 정경심 전 교수와 조범동 씨가 투자나 대여금과 관련해 긴밀하게 논의했던 여러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셋째, 주가 조작의 대상이 된 회사와 정경심 전 교수의 관계입니다. 코링크PE 조범동 씨가 경영권을 확보한 후 주가 조작을 시도한 회사가 WFM이란 곳인데, 정경심 전 교수가 WFM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컨설팅료를 지급받은 데다가, WFM 주식을 정경심 전 교수가 매수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정리하면, 주가 조작에 동원된 자금을 공급한 '전주' 역할을 했다는 점, 주가 조작 주범과의 특수 관계, 그리고 주가 조작 대상이 된 회사와 정경심 전 교수의 관계, 이 세 가지가 정경심 전 교수의 주가 조작 관여 의혹의 주된 근거였던 겁니다.
주가 조작에 동원된 자금이 정경심 전 교수로부터 나왔는데, 주가 조작을 한 사람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 주가 조작 대상이 된 회사로부터 돈까지 지급받았으니, 정경심 전 교수가 주가 조작이 진행되는 사실을 알면서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거죠.
물론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아주 철저하게 수사했지만 정경심 전 교수를 주가 조작 관여 혐의로 기소하지 못했습니다.
의심스러운 일부 정황만 있었을 뿐이지 정 전 교수가 주가 조작 사실을 알고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정경심 전 교수의 주가 조작 관여 의혹의 근거로 해석됐던 정황들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서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첫째, 앞서도 말했지만 김건희 여사 자금이 주가 조작 의심 거래에 동원됐으니, 일종의 '전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주가 조작의 주범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김건희 여사는 사업적 이유 등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권 회장이 주가 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권 회장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셋째, 김건희 여사가 주가 조작의 대상인 도이치모터스에서 비상근 이사로 재직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정경심 전 교수와 마찬가지로 주가 조작 대상 회사였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따로 직접 매매한 적도 있고요
전주 역할, 주가 조작 주범 혐의로 기소된 인물과의 특수 관계, 그리고 주가 조작 대상 회사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까지, 정경심 전 교수에게 주가 조작 관여 의혹이 제기될 때 정황과 판박이처럼 흡사한 겁니다.
검찰 수사는 왜?
정경심 전 교수의 경우에도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했지만 주가 조작 공모 의혹에 대해선 결국 기소하지 못했죠. 마찬가지로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관여 의혹도 정황만으로는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과연 정경심 전 교수에게 그랬듯이 김건희 여사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가 2년이 넘었고, 주범 혐의를 받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나, 김건희 여사 계좌를 주가 조작에 이용한 혐의를 받는 '선수' 이 모 씨 등은 이미 지난해 11월, 12월에 기소된 상태인데,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불러서 조사했다는 소식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 직전에야 선거 때문에 수사가 중단됐다고 하더라도, 선거 끝난 지도 여섯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 납득하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권오수 회장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선,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심 거래가 시작된 날짜인 2010년 1월 12일에 계좌 운용을 맡았다는 이 씨가 아니라 김건희 여사가 직접 거래를 실행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녹취록과 관련자 증언도 나왔습니다.
이 씨에게 거래를 맡겨놓기만 해서 어떤 거래가 이뤄졌는지 잘 몰랐다는 취지의 김건희 여사 해명과 배치될 수 있는 정황인 거죠.
검찰의 '부채'
원래부터 검찰은 인사권을 가진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살아 있는 권력 자체가 불과 1~2년 전까지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니,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과 감시의 시선이 더욱 따가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검찰이라는 기관이 물려받게 된 부채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수록 검찰은 과거보다 더욱 엄정하고 철저하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지금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수사가 그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겁니다.
만약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사안을 엄정하게 처리한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기회는 앞으로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획 : 정윤식 / 촬영 : 신동환 / 디자인 : 장지혜 / 편집 : 김복형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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