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만 달랐다..北 언급 빠진 유엔총회 연설, 왜?

정준기 2022. 9.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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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朴·文은 모두 데뷔 무대에서 언급
'北 반발 의식' '한반도 주도권 챙기기'
'北 매몰 文 반작용' 해석도 나오지만
'3D로 비핵화' 정부 기조와도 달라 의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데뷔 무대에선 '북핵'도 '담대한 구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한국 정상들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주제로 한반도 청사진과 포부를 밝혔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강대강으로 맞붙는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크지만, 국제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기회를 흘려보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취임 후 첫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에선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회적 언급 외에 북한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 첫 대북제재 결의(1695호)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유엔총회 연설을 활용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①北 반발 우려했나

연설에서 '북한'을 의도적으로 뺀 이유로 먼저 '상황 악화 방지'가 거론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자 북한은 곧바로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거친 언사로 단칼에 거절했다.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이달 8일 '핵 선제 사용'을 아예 법에 규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이처럼 북한이 열을 내는 상황에서 재차 담대한 구상이나 비핵화, 인권 문제를 꺼내봐야 귀를 기울일 리 만무하다. 유엔총회 일반토의 마지막 날인 26일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 연설이 예정돼 있는데, 자칫 윤 대통령 연설과 엮여 남북 대립구도만 부각될 수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의 제안과 북한의 거부가 고착화되다 보면 오히려 담대한 구상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더 진전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②"왜 北에 끌려다니나"...尹 정부의 차별화?

윤석열 정부가 그간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강조해온 연장선에서 볼 수도 있다. 의도적인 시간 벌기라는 것이다. 북한이 잇따라 마뜩잖은 태도를 보이는 만큼 섣불리 설득하려 나서거나 메시지 톤을 바꾸기보다 좀더 반응을 기다릴 때라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대북 메시지는 담대한 구상 발표를 통해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반도를 넘어선 글로벌 중추국가'를 강조하며 차별화에 주력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줄곧 '대북 정책에 매몰됐다'고 지적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권은 2020년 9월 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하자 물고 늘어진 전례가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유엔 연설 초점을 북한이 아닌 국제사회에 맞추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미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을 "특정 친구(북한)에게만 집착하는 학생"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③"원칙 강조했어야" 논란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이런 사정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한 문제를 애써 외면한 것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이 한반도 최대 현안을 외면한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줄 우려도 있다. '3D(억제, 압박, 대화)'를 통해 담대한 구상을 실현하고, 국제무대에서 일관되게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겠다던 정부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

특히 "추가할 대북 메시지가 없다"는 대통령실 설명과 달리, 북한을 상대로 실제 보탤 내용이 없는지는 의문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광복절 경축사 등에서 담대한 구상이 충분히 설명되지도 못했고,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재차 원칙을 강조할 필요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와 연대'는 자칫 이념 잣대에 의한 진영의 연대라는 오해 소지를 내포한다"며 "진영의 이합집산으로 유엔 안보리가 무실화되고 북핵 해법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우려 표명 등이 담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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