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산업화시대 압축..강렬한 '파이프 회화'

김슬기 2022. 9. 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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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추상화 거장 이승조 개인전
시속 100km 이상 달리는
기차여행에서 영감 얻고
아폴로 달탐사선 본 후
우주 공간에 관심 가져
원통 파이프 작업 시작
"50년 지나도 세련된 작품"
프리즈 기간에 호평 쇄도
지난 3일 밤, 서울 삼청동 일대 갤러리들이 자정까지 불을 밝힌 '삼청 나이트'에서 최고의 명소는 국제갤러리였다. 전시장 외벽에 걸린 형형색색 조명 아래 DJ의 음악으로 클럽처럼 변한 야외와 달리 갤러리를 채운 추상화들은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3개 전시관을 채운 회화들의 현대적인(Modern)인 미감(美感)에 세계에서 몰려든 미술애호가들은 감탄했다. 놀랍게도 반세기 전에 그려진 회화가 빚어낸 조화로운 밤이었다.

한국의 간판 화랑 국제갤러리가 '프리즈 위크'에 전략적으로 내세운 작가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선구자인 이승조(1941~1990·사진)다. 10월 3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은 작가의 주요작 30여 점을 소개하고, 스케치 노트 등 아카이브 자료로 그의 삶도 엿볼 수 있도록 꾸몄다.

이승조는 1962년 권영우 서승원 등과 함께 기득권에 반하는 전위예술 단체 '오리진'을 결성했고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 동인으로도 활약했다. 단색화 작가들이 이끈 주요 단체전, 해외그룹전에도 참여했지만 이른 나이에 작고하며 동인들의 세계적 비상을 목격하진 못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도열하는 기둥'을 주제로 회고전이 열려 재평가받고 있다.

`핵(Nucleus) PM-76`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K1관 입구에서 만나는 1960년대 후반 작업부터 그의 대표적 도상인 파이프 원기둥 구조를 만날 수 있다. 1967년 최초의 '핵' 연작을 발표한 뒤 4개월 후 내놓은 '핵' 연작 10번째 작품에서 원기둥은 처음 등장했다. 당시엔 적·청·흑색 등의 색면을 가로와 세로로 쌓아 올렸다. 몇 년 만에 원기둥은 주요 회화언어로 자리매김했다. 앵포르멜로 대표되는 '뜨거운 추상'에 대적할 새로운 전위로서 '차가운 추상'의 등장이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인쇄한 게 아닌가 싶은 정교한 도상은 온전한 수작업에 의존했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경계를 정한 뒤 납작한 붓으로 유화를 입혀 파이프를 그렸다. 붓의 가운데는 밝은 물감을, 양 끝에는 짙은 물감을 묻혀 입체적인 기둥을 한 번에 그렸다. 채색 후 사포질을 통해 화면을 갈아내면 금속성의 윤기가 더해졌다. 오묘한 색의 변화조차 모두 붓으로 만들어냈다.

파이프 회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복잡한 구성으로 엄격한 질서 안에서 변주되기 시작했다. K3관에선 작고 직전 완성한 가로폭 7m에 달하는 압도적인 대작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작업에 붙는 별명을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작가노트에서 "나를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않고 싫지도 않은 말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브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서 오는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냄이 이름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은 더구나 아니다"고 설명했다.

작고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석은 다양하다. 이승조를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낸 이일 평론가는 이승조를 20세기 모더니즘의 계보에 위치시키며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국내에서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현대미술의 교황으로 불리는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회화의 목표로 제시한 평면성의 표현으로 해석한 것이다.

1970년대는 맹렬한 산업화의 시대였다. 원통형 파이프는 산업화와 시각적 연관성을 지닌다. 작가 스스로는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여행에서 어떤 환영을 지각한 것을 작업의 시초로 설명했다.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해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1969년 아폴로 달탐사선을 목격한 후 작가는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 시작한 이 작업이 내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기계문명이 가져온 지각 방식의 변화가 그의 예술을 태동시킨 셈이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1980년대까지만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에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에 널리 알릴 작가라 판단해 프리즈 위크의 작가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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