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왜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심진용 기자 2022. 9. 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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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생중계 캡처화면.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조연설하며 ‘자유’를 21번, ‘유엔’을 20번, ‘연대’를 8번 언급했다. 11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는 1번도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유엔총회 연단에서 북한을 거론하지 않은 역대 대통령은 그간 없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유엔총회에서 첫 연설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어김없이 북한을 말했다.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2009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그랜드 바겐’ 구상을 제시했다. 북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북핵문제를 일괄타결하자는 내용이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2014년 연설에서 북핵과 북한 인권문제를 함께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큰 관심과 우려를 갖고 있는 인권 문제 중 하나가 북한 인권”이라고 했고, 탈북민 인권문제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연설에서는 당시 이란 핵협상 타결을 언급하며 북한 비핵화에 국제사회의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5차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했고, 거의 매번 북핵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포기’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 ‘한반도평화프로세스’와 같은 말들이 유엔총회 연단에서 나왔다. 종전선언을 언급하거나 제안한 횟수만 3차례(2018·2020·2021년)였다.

윤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내놓은 ‘담대한 구상’ 제안에 대해 북한은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즉각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다. 지난 8일에는 선제타격을 골자로 하는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는 등 북핵을 둘러싼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 기간 윤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전혀 거기(담대한 구상)에 대응할 여건이 안 돼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그걸 또다시 유엔총회장에서 말할 필요는 없다는 전술적 계산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담대한 구상’ 제시 후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차 북한을 직접 거론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연설에서 북한이란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게 오히려 더 공격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서 “직접적인 대북 메시지는 없었지만, 대량살상무기·인권유린 문제를 지적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만 3차례 거론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노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보도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이라고 하는 특정한 교우에 대해서만 좀 집착해왔다”고 문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는 대신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 등을 강조했다. 취임사와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이 일관적으로 강조해온 내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유엔총회 연설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북한 없는 연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 정치와 안보를 좌우하고,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매우 중요하니까 관심을 촉구하는 얘기 정도는 했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담대한 구상’이 연설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담대한 구상에서 담대해 보이는 대목은 비핵화 대화 초기 단계부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겠다고 한 대목인데,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주체가 유엔”이라며 “그러면 유엔 가서 이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담대한 구상’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 특성상 유엔에서 언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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