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죽음을 애도하며 새로운 삶을 노래하다
10월 30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제주 4·3과 태국 민주화시위 등
개인·공동체간 영적 연결 시각화
태국 출신 유망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36)의 작품 '죽음을 위한 노래·삶을 위한 노래'를 감상하려면 일단 이처럼 전복된 공간과 어두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기 위해 다른 차원으로 유도하는 듯하다. 무대 위 한켠에 켜진 촛불들이 그런 의심을 더한다. 마치 유령처럼 형광색 몸체에 작가처럼 긴 머리를 한 인체 형상과 토끼 인형들 옆에 앉아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비디오 연작 영상을 본다.
마치 콜라주 기법처럼 연결된 영상은 다양한 음향과 음악으로 풍성해졌다.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간 작가가 어린시절을 함께 하고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해주던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상실을 제주 4·3사태와 태국 민주화 시위 등 공동체간 분열과 폭력의 역사와 엮어서 풀어냈다.
문지윤 아트선재센터 디렉터는 "자칫 인과관계가 없어보이는 개인적 서사와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영(靈)적인 차원으로 연결되는지 살피면서 서양의 존재론적 사고 외부에서 존재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삶을 위한 노래'는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던 시점에 뉴욕에서 촬영하고 환경디자이너인 알렉스 그보익(38)과 협업해 완성했다. 모닥불을 피워 춤추는 젊은이들 모습은 주술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얼굴에 회칠 하고 검은 날개를 단 젊은이들은 초고층 빌딩의 현대 도시 배경으로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존재로 보인다. 물속 어린이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인물화 거장 마를렌 뒤마(69)의 그림처럼 묘하다.
'삶을 위한 노래'는 문학 텍스트를 주로 사용해서 좀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려 시도했다.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 영적인 명확성을 위해서 싸웠다는 공통점을 지닌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에두아르 글리상의 '의식의 태양', 체슬로우 밀로즈의 '기도'를 내레이션으로 전달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열리고 예약제로 감상할 수 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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