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발생 후 뒷북 대책'..'전주환 살인 사건'에서 또 반복된 공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반복..법 개정·실효성 대책 시급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스토킹 남성에 의해 여성 역무원이 사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재발대책 마련이라는 큰 숙제를 던지고 있다. 경찰과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 보완 등 법 개정 과제까지 마련했으나 '뒷북 대책'이라는 회의론이 많다. 사건 발생 후 대책 발표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반복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피해자 위해 우려 고려했나
경찰은 21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보복살인 등) 혐의로 전주환을 검찰에 송치했다. 전씨가 스토킹 피해자인 역무원 A씨(28)를 숨지게 한 후 엿새 만이다. 경찰은 애초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가 형량이 더 높은 보복살인으로 죄명을 변경했다. 경찰은 전씨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으나 예방 가능한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지난해 10월7일 카메라등이용촬영과 촬영물등이용협박 등 혐의로 경찰에 전씨를 고소했다. 다음날 경찰은 전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A씨는 이후에도 전씨가 자신을 스토킹한다며 또다시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경찰은 올해 1월27일 혐의가 인정된다며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주목할 것은 2차 고소 당시 전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21일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의 핵심은 스토킹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면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에 처하는 것이다. 흉기를 이용하면 최대 5년 징역 또는 벌금 5000만원으로 처벌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나 경찰은 2차 고소로 전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1차 고소 사건 당시 영장이 기각됐을 때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해명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70조 2항에는 구속사유 검토 과정에서 '피해자 위해 우려와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이 이 같은 고려사항을 살펴봤는지 의문인 상황인 것이다.
'스토킹 처벌 강화'를 취지로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스토킹처벌법 시행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1월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인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법 개선이 더디다는 것이다.
◇ 경찰 "검경 협의체 구성…전수조사도"
경찰이 A씨 안전조치를 해제한 것도 스토킹처벌법의 실효성 논란을 부르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전씨를 처음 고소한 지난해 10월 이후 신변보호112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A씨에게 안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순찰 등 강도 높은 다른 조치는 하지 않았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재범 우려가 있는 가해자에게 △서면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 잠정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정조치 기간은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어 제재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경찰은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전화 금지 등 잠정조치보다 아래 단계인 긴급 응급조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긴급 응급조치 위반에 따른 제재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다. 법 논의 단계부터 형사처벌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보호조치를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형사처벌 △긴급잠정조치 신설 △보호조치 결정 단계 축소를 법 개정 과제로 정하고 국회를 설득해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검경협의체를 구성해 스토킹 신고부터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등을 논의하고 처리 단계를 단축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윤 청장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거나 잠정조치를 결정할 때 현실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잠정조치(유치장 유치) 4호 인용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은 또 불송치 사건을 포함해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인 스토킹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서울 기준 전수조사 대상은 400건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청장은 "범죄 피해자의 안전조치를 보다 적극적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정교화하겠다"며 "(현장에서) 담당자의 판단 부담을 줄이고 객관적인 판단 근거가 될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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