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자다가 가는 꿈
태풍 힌남노에 이어 난마돌이 동해안쪽으로 빠져나갔다. 유달리 올해는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재해가 잦다.
지난 8월 서울을 강타한 물폭탄으로 신림동 반지하의 일가족 세 명과 상도동 반지하 주민 한명이 참변을 당했다. 숨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먹먹함은 어찌할 수 없어도 칠순의 노모를 모시는 40대의 딸이 장애를 가진 언니, 그리고 열 세살의 딸과 함께 당한 반지하의 참사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용한 비닐봉지까지 씻어 다시 써가며 모은 돈으로 장만했다는 반지하의 집은 말 그대로 뼈빠진 노력의 끝이었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의 허리 졸라맴이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이번 폭우는 그리도 쉽게 빼앗아 가버렸다.
우리를 더 상심케 하는 것은 재해와 재난 그 자체보다는 예방이 가능한 예견된 재해였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대게 어렵고 힘든 이웃을 대상으로 함에 있다.
반지하는 소설과 영화의 주제로 많이 다뤄져 왔다. 영화 기생충의 모티브이기도 한 반지하는 1970년대 지하대피소라는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져 불법적 주거와 합법적 주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곳은 습기·곰팡이와 싸우고 천식과 기침을 달고 사는 주거의 사각지대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만 20만 가구에 약 36만명의 시민이 반지하에 거주한다. 반지하의 주거자는 고령자, 1인가구, 장애인의 주거 비율이 높다고 한다. 반지하에 주거하는 60살 이상의 고령층은 약 30%에 달하며, 또한 약 56%에 가까운 가구가 1인가구이고, 장애인 가구는 약 15%에 달한다고 한다. 즉 반지하는 고령에 1인 가구 비율이 압도적이다.
사회안전망의 촘촘함은 이런 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의 촘촘함을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헌법으로 정하고 있고, 우리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주거기본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UN이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국가지위를 변경한 유일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의무로부터 외면 받고 주거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그늘이 존재한다. 우리는 늘 사후약방문처럼 이렇게 저렇게 외친다. "재난관리 원점 재검토", "반지하주택 중점관리", "반지하 주거실태조사" 등 요란을 떤다. 그 뒤에 그 일들은 망각의 곡선처럼 서서히 잊혀져 가다 새로운 재난이 다시 그것을 불러낸다.
8월 폭우 참사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힌남노 때는 지나칠 정도로 온 나라가 태풍에 매달렸다. 태풍의 경로가 시시각각 방송으로 보도되고 엄청난 파도가 덮치는 해안가에서 실시간 태풍을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은 살신성인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온 국민의 관심과 노력으로 힌남노와 난마돌의 피해는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올해는 무사히 넘겼더라도, 지자체단체장이 바뀌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 이웃들에 대한 보호는 절대 멈춰서도 바뀌어서도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더 큰 대한민국'과 '더 따뜻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국정철학을 밝혔다. 이제 우리나라도 잘사는 것만이 아닌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자원봉사프로그램으로 독거 어르신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지금 무얼 가장 바라고 계세요?"라는 늘상 나누는 대화였다. 그 분의 그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 나이에 멀 바랴, 그냥 가는겨어, 자다가 가는겨어"라는 말씀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함께 묻어나온다. 그냥 주무시다가 돌아가시는 것이 그 분이 원하는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분이 외롭고 무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회안전망이다. 그 분의 작은 소망인 자다가 가는 꿈을 이제 우리는 돌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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