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칼럼] 연금 개혁,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여론독자부 2022. 9.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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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경제]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됐지만 그간 제대로 된 개혁은 없었다. 얼마나 더 내고 덜 받을 것인지는 단순한 덧·뺄셈에 불과함에도 정치적 득실에 대한 계산이 복잡하다 보니 개혁 논의는 방향을 잃기 일쑤였고 그 공백을 포퓰리즘이 차지했다.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국민연금에 똑같이 맞추자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민연금은 개인의 소득 일부를 정부가 징수해 나중에 연금 급여로 돌려주는 ‘저축’에 해당한다. 반면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은 이러한 단순한 저축이 아니라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진 제도이다. 게리 베커와 조지 스티글러라는 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1974년에 공저한 논문에서 공무원의 업무 노력을 제고하고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급여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지 않고 남겨뒀다가 퇴직 이후에 지급하는 제도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공무원 임금 총액이 100원이라면 그 가운데 60원은 현직일 때 지급하고 퇴직 시점까지 근무하면 그간 지급하지 않은 40원에 이자를 더한 액수, 일례로 50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공무원이 현직에서 부정을 범하거나 해임·파면 사유가 발생하면 이 50원이 몰수된다는 점이다. 즉 미지급된 임금을 잃을 수 있다는 페널티가 공무원들에게 부정을 범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유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가의 직역연금은 동기부여를 위해 이러한 몰수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공무원 연금엔 미지급 급여도 포함

국민연금 잣대로 수지 따져선 안돼

정치적 논리 대신 연금별 차이 고려

동기부여 동시에 재정 고갈 대비를

국민연금은 이러한 몰수 조항이 없는 단순 저축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의 기여금·수급액 구조를 단순하게 일치시킬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임금 100원을 받는 민간 부문 근로자가 20원을 국민연금 기여금으로 납부했고 그 운용 수익을 합한 원리금이 25원이라고 하자. 국민연금은 애초에 시작할 때 25원이 아니라 50원을 지급하겠다는 포퓰리즘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25원으로 낮춰 재정 고갈을 예방하는 것이 올바른 개혁일 것이다.

반면 공무원은 100원 가운데 20원은 퇴직할 때까지 미뤄져 있기 때문에 현직에서는 민간보다 낮은 80원을 급여로 받는다. 이 공무원이 연금 기여금으로 20원을 납부하면 퇴직 시점에는 연금 기여금의 원리금 25원에 미지급 임금의 원리금 25원을 합쳐 총 50원을 지급받게 된다. 겉으로는 수급액이 50원으로 국민연금과 같아 보이지만 공무원의 경우 미지급 임금이 포함된 액수이므로 국민연금과 달리 수지 불균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미지급 임금의 원리금을 연금에 포함시켜 지급하기 때문에 수지 불균형인 것처럼 보일 뿐이고 공무원은 “박봉이지만 연금이 좋다”는 평을 듣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골자는 연금 지급액을 25원으로 낮춰 수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도 똑같이 25원으로 삭감하면 수지 균형이 아니라 퇴직할 때 주겠다고 약속한 미지급 임금을 정부가 주지 않는 꼴이 된다. 정부에 대한 신뢰의 추락, 공무원 인력의 질적 하락도 문제지만 페널티 액수가 50원에서 25원으로 감소해 공무원들이 열심히 청렴하게 일할 동기까지 반감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이다.

수지 균형은 직역연금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다만 동기부여를 위해 지급이 미뤄진 급여까지 제대로 감안해 수지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금 개혁에 전문가들이 투입되는 것은 덧·뺄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러한 차이가 충분히 감안된 효과적인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국민연금 개혁에 보조를 맞추자는 포퓰리즘은 연금 개혁이 아니라 공무원 사회를 부패시키고 사기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연금 개악이 될 수밖에 없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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