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한중수교 30주년과 선택의문문

박응석 2022. 9.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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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먹을래요? 짬뽕 먹을래요?"라고 물으면 저는 볶음밥을 먹겠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물으면 특별히 먹고 싶던 메뉴가 없거나 그 자리의 분위기를 고려해 둘 중 하나를 고릅니다.

선택은 선택한 대상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나머지를 은폐하기 때문에 짜장면과 짬뽕이 말해진 순간 이 두 메뉴는 나머지 메뉴와 그 위상이 달라집니다.

이런 질문의 반복으로 사람들 머릿속에는 짜장면과 짬뽕이 중식의 일반적 메뉴로 자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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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석 연세대 글로벌엘리트 학부 교수

“짜장면 먹을래요? 짬뽕 먹을래요?”라고 물으면 저는 볶음밥을 먹겠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물으면 특별히 먹고 싶던 메뉴가 없거나 그 자리의 분위기를 고려해 둘 중 하나를 고릅니다. 하지만 저는 약간의 눈치를 보며 ‘제3의 메뉴’ 볶음밥을 고르는 것으로 선택의문문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납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질문한 것이 의도적인지 무의식에서 그런 것인지는 알기 어렵고, 그 질문의 구성과정과 효과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더 재밌고 유익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질문한 사람은 사회적 상식이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짜장면과 짬뽕을 중식의 대표 메뉴로 보고 있습니다. 또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가장 싼 메뉴 두 개를 고른 것일 수도 있고요. 이제 질문을 받은 사람은 질문에 등장한 단어 ‘짜장면’과 ‘짬뽕’에 의해 머릿속에 [짜장면]과 [짬뽕]을 연상하게 됩니다. 우선 짜장면과 짬뽕‘만’ 떠오릅니다. 선택은 선택한 대상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나머지를 은폐하기 때문에 짜장면과 짬뽕이 말해진 순간 이 두 메뉴는 나머지 메뉴와 그 위상이 달라집니다. 이런 질문의 반복으로 사람들 머릿속에는 짜장면과 짬뽕이 중식의 일반적 메뉴로 자리합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제게 이렇게 묻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교수님, 친중(親中)이세요? 반중(反中)이세요?” 그래서 “나는 지중(知中)인데. 좋고 싫고를 떠나서 중요하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강의시간에 중국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이야기하니 그 학생은 저를 자신이 가진 두 가지 카테고리 중 하나에 넣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이 학생의 질문에 왜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떤 정보들로 이런 질문을 구성했을까.

인터넷 기사, SNS,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가 일반적 경로일 것 같습니다. 조회수가 힘이 돼버린 미디어 전쟁터에서 다양한 대안이나 깊이를 논하며 길게 말하는 논객들은 자극적인 어휘로 무장한 기자나 유튜버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나 관심 자체가 자본이 되니 ‘한중수교 30주년’을 주제로 진행된 각종 기념식이나 전문가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독자를 잃고 인터넷에는 ‘반중’, ‘혐중’을 키워드로 한 자극적 정보가 넘쳐납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내가 무엇을 보던 그건 내 자유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자유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은 인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입니다. 양질의 정보를 고르는 과정에 따르는 피로감을 피하고 보던 걸 보고 남이 제시해준 것을 보며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겪는 것이 본능에 더 가깝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짜장면과 짬뽕을 제시한 선택의문문을 스스로 요청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나의 색상을 더 구별하고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표현의 자유를 하나 더 얻은 것이고, 그에게는 어제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과 오랜 이웃 국가인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과거에 묶는 낡은 어휘가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관계를 담은 오색찬란한 단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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