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유승민, 그리고 이재용[광화문]
"러시아의 운명은 아이가 몇명 태어나는지에 달려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0년 연두교서 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취임 이후 줄곧 인구감소를 '국가 존망의 위기'로 규정하며 국가 정책목표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그는 과거 주요 경제대국으로 러시아 전성기를 뒷받침한 '인구 3억명' 시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인구수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만큼 전 세계 4위 수준에서 9위로 내려앉은 현 규모로는 미국이나 중국 등을 견제하는데 역부족이라는 현실 인식이 깔려있던 셈이다.
러시아 정부는 그간 둘째를 출산한 가정에 주택구매·아이 교육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러시아인 평균 연 수입의 1.5배에 달하는 25만루블(약 574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어머니 자금(Mother Capital)'이란 제도를 도입해 출생률을 높이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절실한 바람과는 달리 러시아의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올해 인구 감소율은 지난해보다 약 2배 증가했고, 지난 1~5월 인구도 이전보다 40만명 넘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세계에서 가장 큰 땅을 가졌지만 일하는 사람은 부족해 과감한 조처가 필요한 때"라며 10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영웅' 훈장 수여와 함께 100만루블(약 2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출산 장려책이 담긴 법령에 서명한 이유다. 급기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배경에 영토 점령에 따른 '인구 증가'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사실 최근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이 러시아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발표한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기 여성들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으로 홍콩(0.75명)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세계 인구는 올해 79억명에서 2070년 103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우리나라 인구는 같은 기간 5200만명에서 3800만명으로 줄어 들고 인구 순위 역시 29위에서 59위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인구 대책은 아직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인구와 미래전략TF(태스크포스)'를 띄울 때만해도 희망이 보였지만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아직 장관이 없는 상태이고, 현행법(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상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중심의 '인구위기대응TF'를 구성했지만 진전이 없긴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까지 "저출산 극복을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저출산 극복의 사령관이 돼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을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오히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관련 행보에 시선이 더 쏠렸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SDS 잠실캠퍼스에서 30~40대 워킹맘 10여명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그가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직원이 애국자"라고 격려하자 '인구충격' 이슈가 단숨에 옮겨붙였다. "삼성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반영한다"는 댓글처럼 초저출산 문제 해결사로 기업 총수가 나서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정부를 향한 실망감을 덮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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