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국가를 하나로 이끄는 ‘자유의 로드맵’을 짜자

김영수 2022. 9. 2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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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정치는 초현실적이다. 에미상 6관왕에 오른 나라의 정치가 진짜 ‘오징어 게임’ 같다. 여당은 당권을 둘러싸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개딸들의 놀이터가 되며 ‘방탄민주당’을 완성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코노미스트지로부터 “기본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문화는 세계를 펄펄 나는데, 정치는 후진국 뒷골목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을 마치고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19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 환송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진화하고 있다. 태풍 힌남노 때는 집무실에서 밤을 새웠다. 민방위복과 장화 차림으로 수해 현장을 누비고 사망자의 유족을 위로하는 모습이 대통령스러웠다. 명동성당의 무료급식소에서 손수 끓인 김치찌개를 퍼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미소가 절로 났다. “전 정권 핑계 더 이상 안 통한다”거나, “대통령은 경험하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는 말도 정곡을 찔렀다. 취임 후 정치적 곤경은 바로 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영빈관 신축을 둘러싼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꿈이 확 깼다. 다행히 대통령의 신속한 철회 지시로 해프닝이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첫째는 소위 정무적 판단력의 문제다. 지금은 영빈관을 지을 때가 아니다. 경제와 민생이 너무 어렵고, 대통령도 본인과 장차관의 급여를 10% 반납하겠다고 공언했다. 영빈관 신축 계획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런 모순을 몰랐다면, 더 큰 문제다.

대통령실의 설명대로, 국격을 위해 꼭 신축이 필요한가? 그런데 대통령실 이전 예산은 이미 초과되었다. 예산이 더 필요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연한을 만 5세로 낮추는 문제로 이미 혹독한 비판을 받지 않았는가. 정치가는 정책에 실패해도 용서받지만, 설명에 실패하면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 영빈관 신축이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면, 그처럼 허무하게 취소하지 말고 국민에게 그 결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렇게 급히 결정하고 쉽게 취소하면, 신뢰가 무너진다.

대통령실 내부의 의사 결정과 소통도 문제이다. 비서실장은 물론 수석들도 신축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신축이 공개 논의되었다면, 이런 결정이 내려질 리 없다. 대단한 센스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그렇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신축이 최종 결정되었나.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사안인데도, 소수에 의해 비밀리에 결정된 것인가. 실장도 모르는 그 소수란 누구인가. 이런 소수가 존재한다면 국가의 암적 존재고, 훗날 큰 우환이 될 것이다.

김병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위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핵심 멘토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24일 강연에서, 그는 “내각, 대통령실, 정당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5년 뒤에 진다”고 개탄했다. 단순히 여당의 이전투구나 정치적 득실을 지적한 게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문제’, 그리고 ‘당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갖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다.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새 세상이 온 것 같지 않다”(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라든지, “지금 국민은 ‘저 당은 목표가 없는 당인가 봐’라고 한다”(윤희숙 전 의원)의 비판도 모두 같은 말이다.

윤 대통령이 “급하게 서두르고, 서툴게 의견을 철회하는 모습”은 단지 아마추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말하는 프레임과 가치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8·15 기념사에서 33번 천명한 가치는 ‘자유’다. 사실 한미 동맹을 복원하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탈원전 정책을 폐지하고,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는 정책 등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조치이자, ‘자유’의 정책적 실천이다. 다만 확고하고, 절실하고, 총체적이지 않다. 각이 서지 않으니 선명하지 않고, 그래서 내각, 대통령실, 정당이 따로 논다.

신냉전과 대불황의 먹구름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민생은 정쟁으로 내팽개쳐져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한시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쓰나미는 세기적 전환을 가르는 위기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지원법은 수많은 경제 법률 중 하나가 아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났다. 안미경중(安美經中)도 한계에 달했다. 자유무역으로 번영을 일궈온 한국에는 경제적‧지정학적 결단의 시간이 도래했다. 윤석열 정부에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임무와 함께 정치 교체, 시대 교체라는 3중의 역사적 임무가 동시에 부여되었다. 잠시 정치의 캐터필러(무한궤도)를 멈추고, 역사의 앞날을 조망하자. 그리고 국가 전체를 하나로 견인하는 ‘자유의 로드맵’을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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