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황금 티켓 증후군

김신영 논설위원 2022. 9. 2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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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1960년대 영국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등장인물인 초콜릿 회사 사장 윌리 웡카는 초콜릿에 황금 티켓 다섯 장을 무작위로 끼워 파는 이벤트를 연다. 초콜릿을 사 먹다 운 좋게 이 티켓을 뽑는 어린이에겐 신기한 공장을 견학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행운을 잡아보라’는 취지는 변질된다. 부모가 초콜릿 사재기를 하고 초콜릿 포장을 빨리 깔 사람까지 고용한 부잣집 아이들이 대부분 티켓을 차지한다. 돈으로 운까지 끌어올리는 사회를 풍자한 동화였다.

▶동화가 인기를 끌면서 영미권에선 ‘황금 티켓’이 열망하는 무언가를 단숨에 거머쥐게 해주는 수단을 은유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소매상들이 여는 경품 이벤트 등에서 자주 쓰여온 이 말이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 보고서’에 등장했다. 명문대 진학,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집착해 극도의 노력을 쏟아붓고 이에 성공하면 실제로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한국적 현상을 ‘황금 티켓 증후군’이라고 표현했다.

▶명문대 학력 같은 ‘간판’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학력이 가져다주는 득이 그만큼 커서일까. 학부 졸업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학력 업그레이드만을 목적으로 대학원에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인을 위한 특수대학원이 한국엔 700개 넘게 있다. 이런 나라는 드물다. 인터넷에서 인물을 검색하면 이름·소속 다음에 학력이 뜰 정도로 한국인은 학력·학맥·학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만 출신 학교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일본 기업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의 원칙은 “신제품 아이디어는 와세다, 영업 전략은 지방대, 문제 파악은 도쿄대 출신이 잘한다”였다고 한다. 미국도 아이비리그 명문대 출신이면 득을 본다. 하지만 한국처럼 명문대 졸업장이 인생 전체를 바꿀 ‘황금 티켓’이라 믿고 목숨 걸고 달려드는 풍토의 사회는 별로 없다.

▶1993년 조선일보엔 ‘선보는 자리에서 학벌 타령 하는 저질 결혼 문화가 한심하다’는 독자 투고가 실렸다. 워싱턴포스트는 2014년 ‘명문대에 가기 위해 명문초·중·고를 나오고 그래야 좋은 일자리와 배우자를 얻는 사회’라고 한국을 묘사했다. 이젠 OECD까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력만이 아니다. 고시 합격증은 한번 따면 평생 먹고살게 해주는 황금 티켓이라고 한다. 의사·변호사 등 진입 장벽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문직이 한둘이 아니다. 부모들은 황금 티켓을 자식에게 쥐여주려 모든 희생을 다 한다. ‘저출산 부르는 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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