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0] 2차 범죄를 부르는 법의 관대함
“전기 충격을 몇 번 더 주면 토끼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굶어 죽습니다. 이것을 혐오 훈련이라고 합니다.” 금연 치료는 아주 간단했다. 한 번 담배를 피우면 아내가 그 ‘토끼의 방’에 들어간다. 두 번 피우면 모리슨 자신이 그 방에 들어간다. 세 번 피우면 둘이 함께 그 방에 들어간다. 네 번까지 피운다면, 그것은 상호 협조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좀 더 단호한 방법이 취해진다. - 스티븐 킹 ‘금연주식회사’ 중에서
신당역 역무원 살해범은 몇 년간 피해자를 괴롭혀온 스토커였다. 그러나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법원은 구속에 반대했다. 피해자에게 보복할 우려는 하지 않았다. 9년 징역을 구형받고도 스토커는 자유롭게 활보했고 자유롭게 협박했고 자유롭게 살인했다. 피해자가 죽고서야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망 우려가 있다’며 구속을 허락했다.
모리슨은 담배를 확실히 끊게 해준다는 회사를 찾아간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결국 담배라면 진저리를 치게 된다. 금연 회사는 모리슨을 감시한다. 흡연하다 발각되면 그는 물론 가족까지 전기 고문한다. 그래도 끊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는다. 흡연이 불러올 끔찍한 결과에 대한 공포가 금연 치료법인 걸 알고 경악하지만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자발적 금연에도 외부의 무서운 제재가 필요했다. 하물며 범죄일까. 엄한 처벌은 죄를 혐오하게 만든다. 범행 직후 구속이라는 제재조차 경험하지 않는다면 2차 가해가 쉬워진다. 고발에 대한 앙심은 범죄의 또 다른 동기다.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는 신고조차 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중생을 칼로 위협하고 옥상으로 끌고 가려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 피해자의 안전은 고려했을까. 자유와 인권은 타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다. 너무 관대한 법은 ‘범죄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고 부추긴다.
법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그러나 처벌을 방해하고 죄를 방조하면 공무 집행 방해나 직무 유기, 죄를 묵인하고 범인을 보호하면 공범이라 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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