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죽은 스승’의 디지털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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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6일 우리 곁을 떠난 이어령 선생님이 남긴 수많은 책 가운데 ‘가위바위보 문명론’이 있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처럼 일본어로 먼저 출간한 뒤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동전 던지기를 즐기는 서양과 달리 가위바위보를 즐기는 아시아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면서도 절대 승자가 없는 다이내믹한 둥근 원 메타포를 포착한 것이다. 아시아는 앞뒤의 우열이 드러나지 않는 원과 같은 존재이기를 노래하고 싶었을 테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10개월 전인 지난해 4월 23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4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청년들의 인생 질문을 최고의 인문학자에게 듣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평범한 사람이 올바른 길을 위해 사는 것은 헛수고인가요?” “죽음 앞에서 위축되지 않을 수 있나요?” 등 일곱 가지 질문에 선생은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답변을 쏟아놓았다. 대담자인 나와 카메라 3대를 쥐고 있던 촬영 기사 모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처음 듣는 영적 고백 같은 이야기가 섞여 있었고, 선생의 ‘마지막’ 영상 강의가 완성될 거라는 기쁨에 모두가 환호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일주일 후 청천벽력과도 같은 전화가 왔다. 그 영상을 온라인에 올려놓지 말아 달라는 선생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대신 인터뷰에 응한 취지대로 ‘베리타스 포럼(Veritas Forum)’에 대면으로 참여하는 청년들에게만 영상을 틀어달라고 부탁하셨다. 당시에는 선생님의 마음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온라인에 퍼뜨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선생이 떠나신 후 7개월 만인 오는 27일, 1시간으로 편집한 유고 영상을 고려대 대강당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상영하는 자리를 준비하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영상을 아날로그 방식의 대면으로 모인 자리에서 상영하는 것이다. 선생의 평소 지론인 ‘디지로그’(digilog·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가 사후에 또 이렇게 구현되는구나! 수백 청중이 강당에 운집하여 만나는 유고 영상 강연은 또 어떤 느낌일까? 영상에서 다시 뵙게 될 선생님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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