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국제신문 2022. 9.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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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사람도 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자연순환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으스대는 것도 꼴사납지만, 나이 든 사람이 그것을 큰 훈장처럼 자랑하며 내세우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으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산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으면 불멸의 삶을 사는 것이고, 존재감 없이 잊히게 되면 거기서 그 사람의 삶은 끝이 나게 마련이다. 기억의 인자는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다운 삶을 살았느냐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이 들면서 부쩍 부고를 많이 접한다. 더러는 지인들의 아픈 소식도 바람결에 듣는다. 엊그제 문학 모임에 갔다가 도반들의 아픈 소식을 전해 듣고 감정이 알싸하게 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는 파킨슨과 치매라는 이중고를, 또 어느 분은 엊그제까지 멀쩡했는데 병마에 덥석 덜미를 잡혀 있다는 아픔의 기별이다. 그런 느닷없는 전언은 어느새 스멀스멀 좌중에 옮아 붙어 그날의 분위기를 침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걸 보니 삶과 죽음은 늘 함께 뒤섞여 있고,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수시로 바뀌고, 이들 중 어느 것이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존재의 판도가 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하는 일상을 살아온 것 같다. 자고 일어나 눈을 붙일 때까지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면역력에 자신이 붙었다고 내심 자랑하기까지 한다. 죽음의 굳은살이 많이 붙어 웬만한 일에도 그리 놀라는 일이 없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버릇처럼 층계 수를 헤아린다. 층계가 끝나면 그 수에 지금의 내 나이를 합한 뒤 나의 수명을 설정하는 이상야릇한 버릇이다. 그 숫자가 만족할 만한 값이 못 되면 또 다른 계단을 찾아 층계 숫자를 세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죽음의 날을 미리 대비하는 것도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면역력의 굳은살이 붙으니 두려움에 대한 망상이 걷히고, 하루하루 나날의 삶이 더없이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그날이 마치 끝이라도 되는 것처럼 충만한 시간을 만끽하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의외로 덤으로 오는 것도 많다. 그동안 살아온 날의 흔적과 문학적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버릇도 생겼다. 얼마 전엔가 여섯 번째 희곡집을 내어 고별 북 콘서트를 열었고, 두 해 뒤에는 역시 여섯 번째 소설집을 내어 고별 콘서트를 할 계획도 세워 놓았다. 내자와 나 둘 중 누가 먼저 떠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세탁기 조종하는 규칙과 순서를 비롯해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생활의 지혜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두 편의 외화를 보았다.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하나는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바탕으로 죽음 앞에 놓인 한 남자의 무기력하고 나태한 일상을 파편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고, 다른 한 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인 ‘존엄사’ 문제를 제시하고, 두 딸이 티격태격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문제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내 죽음의 굳은살을 불리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자연의 순환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면역력의 증강, 남은 인생을 충만하고 값지게 사용하는 현재적 삶의 태도 형성, 그리고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존재감에 근력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죽음은 삶의 반면교사가 충분히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안은 채 걷고 말하고 밥을 먹는다. 두 개의 화두가 양면에 적힌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떠들며 얘기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죽음이 방문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웃집 마실 가듯 한 다리 건너 훌쩍 뛰어넘고 싶다. 그래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삶의 군살을 빼는 나날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매일 죽는 남자이고 싶다. 매일 죽으며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사는 불가지의 삶을, 실존적 삶을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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