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쌀값 정상화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돼야
지난달 29일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는 ‘농가 불안 대책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저마다 한손에는 볏단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쌀값 폭락 대책 마련” “농업 생산비 보전 대책 마련”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목이 터져라 호소하고 계셨다. 부스스 흩날리는 빗방울 속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발과 꽹과리 소리가 처량하다 못해 애달팠다. 풍년을 축하하는 축제 속에서 신명나게 나부끼던 깃발과 농악 소리가 이처럼 슬프게 들리다니 농민들의 손을 맞잡고서도 그저 면구스럽고 송구할 따름이었다.
지난달 기준 산지 쌀값(정곡 20㎏ 기준)은 4만1185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약 24%나 하락했다. 약 10년 전인 2013년 9월 4만4209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밥 한 공기(100g 기준)의 쌀값이 205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으로 10년 전 71.2㎏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장기간 지속돼온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로 농약값과 비료값을 비롯해 인건비·유류비 등은 폭등하고 있는데 쌀값만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농민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인지 모른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쌀값 폭락은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먼저 쌀값 안정을 위한 자동시장격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초과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며 자동시장격리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격리를 선제적으로 해야 하지만, 정부는 시간을 끌다 해를 넘겨 시장격리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또한 시장격리 가격 결정방식에도 오류가 있었다. 2021년산 쌀 시장격리에서 정부는 역공매방식을 취했다. 최저가 입찰로 매입하다 보니 낙찰가는 전국평균 산지 쌀값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고 쌀값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러한 정부의 잘못된 대처방식이 결국은 지금의 쌀값 폭락을 가져온 것이다. 정부의 안이한 상황인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지켜볼 수도 없다. 쌀값 폭락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장격리 의무화, 시장격리 시기, 매입방식, 가격결정 구조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
필자를 포함한 여러 국회의원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필자가 대표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초과 생산될 쌀에 대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15일 국회 농해수위 농림법안소위원회에서 쌀값 폭락에 따른 농민 지원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어렵게 통과됐다. 이로써 임의 사항이던 정부의 쌀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하고, 쌀 외에 타 작물 재배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 앞으로 농해수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여야의 협치가 이뤄지길 바란다.
쌀값을 안정화하는 것은 농민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보호하는 길이다. 적정 생산능력의 유지를 통한 쌀값의 안정은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고 있다. 주요 세계 곡물가격은 평년의 두 배 내외로 폭등했고, 각국의 수출제한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식량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쌀값의 안정을 통해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의 자급을 확보해야 한다. 한시도 쌀값 안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농업은 식량안보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59.4%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하고, 60.1%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해 추가적인 세부담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어떠한 결정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민생에 여야는 없다. 필자부터 한 걸음 더 뛰겠다.
“밥 한 공기 쌀값으로 300원 해달라는 것이 그리 큰 잘못입니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두꺼비 손으로 필자의 두 손을 부여잡은 80세 농부 어르신의 말씀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북 정읍시·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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