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 칼럼] 대한민국 국가대표, 기업

손현덕 2022. 9. 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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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바이든도 中리잔수도
한국 와 기업 먼저 찾았다
세계가 다들 부러워하는데
정작 우리만 무시한다
어제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주요 연사로 등장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그에게 경제학계 스타란 영예를 안긴 명저가 '경제학의 향연'이다. 원제는 'Peddling Prosperity'. 직역을 하자면 '시시한 번영'인데 나는 이 제목에 대해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번영, 그거 뭐 대단한 거 아니야. 쉽게 말하면 경제성장, 즉 GDP(국내총생산)의 증가인데 방법은 알고 보면 단순해. 그래서 제목이 그런 것 아닌가"라고. 크루그먼은 군소리 하나 안 보태고 결론을 내린다. 듣고 나면 시시하다.

"한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다. 경기 후퇴나 물가 상승, 전쟁 등. 그러나 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생산성 성장(productivity growth)이 유일하다"고.

중국 역사상 지도자가 일본을 방문해 천황을 만난 건 덩샤오핑이 처음이다. 1978년 중국이 현대화란 슬로건하에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에 드라이브를 걸 때였다. 덩샤오핑은 기자들이 운집한 기자회견장에서 일본에 온 목적이 세 가지라고 했다. 첫째, 평화우호조약을 맺는 것. 둘째, 일본 친구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서복이 구하러 떠난 마법의 약을 찾는 것." 덩샤오핑이 찾는 마법의 약은 진시황의 불로초가 아니었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덩샤오핑은 일본 체류 기간 여러 곳의 산업 현장을 둘러본다.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첨단공장이라는 기미쓰 제철소와 조립라인에 로봇을 도입한 닛산 자동차 공장 그리고 파나소닉을 찾아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만났다. 그 시절 일본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조업을 가졌고, 거기서 생산성을 폭발시켜 경제적 번영을 일궈냈다. 그걸 1978년부터 중국이 배우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대략 15년 전쯤 '일본 따라잡기'에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60년의 시간이 축적돼 우리는 이제 사실상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어쩌면 한국은 세계 역사상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피지배국가가 지배국가를 능가하는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주 한국에 온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리잔수 정치국 상무위원이 짧은 체류 기간 찾은 곳도 LG그룹의 마곡 사이언스파크였다. 초청자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하기 전에 들른 것이다. 그냥 면담의 편의를 고려해 짠 일정이 아니다. 동선(動線)을 감안한다면 거꾸로 일정을 잡는 게 맞는다. 일거수일투족에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그랬다. 8년 전 국가주석의 신분으로 한국을 찾을 때 짬을 내 경제인과의 간담회를 가졌고 저장성 당서기 때는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과 기흥 반도체 공장을 둘러봤다.

44년 전 덩샤오핑이 일본 기업을 찾아 부국이 되는 방법을 구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한국 기업을 찾아 경제 선진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리잔수 위원은 중국으로 떠나는 날 세계지식포럼의 사전행사로 준비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둘러보고 나서 "한국 기업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서복이 찾고자 한 마법의 약은 이제 일본이 아니라 어쩌면 한국에 있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한국 방문에서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었다. 헬기를 타고 평택 미군기지를 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놀란 바로 그곳에서 바이든은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세계지식포럼 첫 세션에 참석한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어제 한국을 첨단기술 강국이라고 스스럼없이 치켜세웠다.

이렇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기업인데 정작 우리 국민, 특히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진정한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기업이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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