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기술전쟁 격화될수록..유탄은 한국에 쏟아진다 [Big Picture]
미국은 대외적으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반도체 산업 동맹체(Chip4) 등을 구축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미·중 간 갈등은 2020년 1단계 무역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과 기술적 우위를 지속하고자 반도체와 과학법(Semiconductors(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등을 마련하고 중국 견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대만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외교적 움직임을 보이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근본적으로 폐기하는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TPA) 추진을 통해 대만을 중국과 별도의 정부로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같은 달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 역시 청정에너지 확대, 재정적자 축소 등을 통한 물가 억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미국산 전기차 세액공제 내용을 뜯어보면 국내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미국에서 제조하지 않거나 중국산 광물 및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는 대당 7500만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올 상반기 북미지역 전기차 판매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기록한 현대차의 선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향후 북미산을 포함해야 하는 광물 조건은 2027년 80%, 배터리 부품 조건은 2029년 100%까지 상향 조정된다는 점은 우리 기업들에 부담 요인이다.
특히 중국은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리튬, 코발트 등의 핵심 광물을 수입 후 가공해 판매하는 공급망을 각각 60%, 80% 이상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투자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미국, 중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관련 법안 시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R&D 지출 규모는 PPP 달러 기준 2000년 2695억달러에서 2020년 7209억달러까지 2.7배 증가한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329억달러에서 5828억달러로 17.7배 증가했다. 경제 규모(국내총생산·GDP)를 고려하더라도 R&D 지출은 미국이 2000년 2.6% 대비 2020년 3.5%로 0.9%포인트 증가했으나, 중국은 같은 기간 0.9%에서 2.4%로 1.5%포인트 이상 확대됐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G2 패권 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중국 공급망 차단 전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자국 핵심 이익을 확고히 하고자 해 대만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2018년 미·중 분쟁 본격화 이후에도 중국의 GDP가 글로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2000년 글로벌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은 31.3%, 중국이 3.9%에 불과했지만, 2022년 미국이 24.4%, 중국은 19.2%로 변화하면서 중국의 세계 경제 영향력은 미국을 위협할 만큼 크게 확대됐다.
한편 대만은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국가로 반도체 산업 공급망의 핵심 허브다. 대만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양 연결지점에 위치해 있어 대만해협은 중국 입장에서 해상 운송의 요충지이며 미국에도 대만은 인도·태평양전략에 중요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위탁생산) 시장에서 대만의 시장 점유율은 약 64%(트렌드포스)로, 주요 반도체 공급처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 또한 양국 간 갈등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산업연관표를 활용한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미·중 갈등이 확대되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 제재가 전 산업에서 이뤄졌을 때 미국의 부가가치 감소액이 1474억달러로 가장 크고, 다음으로 한국이 1144억달러로 분석돼 일본 1098억달러, 대만 578억달러보다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GDP 대비 비중으로 보면 대만이 9.5%로 가장 크고, 다음으로 한국 6.6%, 일본 2.2%, 미국 0.7% 순이다.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OECD 38개국의 경제손실은 5835억달러로 전체 GDP에서 0.7%에 달하는 충격이다. 더욱이 전기전자, 통신장비제조 등 전략산업 부문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가 이뤄진다면 한국의 부가가치 감소는 601억달러에 달해 대만 333억달러, 일본 250억달러, 미국 129억달러에 비해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GDP 대비 비중으로도 대만 5.5%, 한국 3.5%, 일본 0.5%, 미국 0.1% 순이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돼 경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세계 주요국 경제뿐 아니라 국내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공급망 역시 미국,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러한 영향은 경제성장 및 산업경쟁력에 직결되기에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첫째,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기업의 R&D, 시설투자 등을 위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전략 품목 및 핵심기술에 대한 보호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국내 설계 및 생산의 밸류체인 구축 노력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지속 확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첨단산업의 소재 및 핵심 장비 개발 등 기술력 제고가 시급하다. 반도체, 전기차 등 소재·부품·장비 산업경쟁력의 원천인 기초 연구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연구인력 육성과 글로벌 선도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한 R&D 투자, 실증센터 확대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꾀해야 한다.
셋째, R&D 인력 양성과 핵심 인력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절실하다. 첨단산업의 세계 선도를 위해 정부는 기업의 R&D 투자 유도뿐 아니라 정부 및 산학연 협력 모델을 통한 고급인력 육성 정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R&D 핵심 인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및 관리 시스템 활성화를 검토하고 기술 안보를 위한 법·제도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기업은 선제적인 투자 확대뿐 아니라 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경쟁력 강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 점유율 확대 및 기술력 확보를 위해 기업 간 전략적 인수·합병(M&A) 등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다수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자국 기술 통제로 외국의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기술·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R&D 투자 확대를 통해 기술력을 유지하고 디자인, 브랜드 등 비가격경쟁력 제고에도 주력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와 내수 시장 확대를 통해 외부 충격에 강한 경제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특정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고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완충 능력 강화가 절실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첨단산업 육성 등 경제 구조 업그레이드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