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中 '역사왜곡' 계속 주시해야
'고구려·발해사 뺀 전시' 단순 해프닝 아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시기에 들어와 중국은 세계 최고의 문명대국을 추구하면서 자국 역사의 유구함과 문화적 우수성을 강조함으로써 애국심과 중화민족 공동체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높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박물관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국의 주요 박물관 입구에는 ‘애국 교육 기지’란 현판이 붙어 있다.
2002년부터 5년간 진행된 ‘동북공정’(東北工程) 이후 고구려 유적이 있는 지린성, 랴오닝성 소재 박물관에서는 고구려 관련 전시를 많이 했다. 동북공정 진행 초기에는 ‘고구려는 중국사’,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구절이 담긴 패널을 게시함으로써 논란이 되었다. 한국 학계는 물론이고 중국 학계 안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잘못된 내용의 패널을 그대로 게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학술적 논의와 관계기관의 노력이 반영되어 어느 정도 내용 정비가 이루어져 요즘은 이렇게 노골적인 패널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고구려사를 보는 한국과 중국 학계의 시각 차이는 여전히 매우 큰 상태이고, 동북3성 지역의 박물관에는 중국사의 입장에서 매우 교묘한 수사로 고구려의 성격을 표현한 패널들이 게시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그런데 최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구려사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展)에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낸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빼고 편집한 연표를 게시했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박물관의 상설전시관에는 한국사 관련 내용이 많지 않다. 고구려, 발해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에 고대 청동기전이 열리면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이 박물관의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강력한 항의로 비교적 짧은 시일에 문제가 된 연표가 철거되긴 했다. 하지만 상대 박물관에서 제공한 자료를 무단 편집함으로써 한국 역사의 계통을 혼란시켰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다른 내용도 아니고 한·중 사이에 가장 첨예한 역사 현안으로 여전히 폭발성을 갖고 있는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빼는 식으로 연표를 자의적으로 편집했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박물관은 어릴 때부터 애국주의 교육을 받아 온 중국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참관하는 곳이다. 중국의 정책은 중앙으로부터 지방으로 일사불란하게 전달된다. 자칫 중국 국가박물관의 특별전 연표에 드러난 고구려사와 발해사 인식이 지방 박물관에 일종의 지도 의견처럼 전달되지나 않을지 염려가 된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는 한·중 두 나라 학계의 의견차가 여전히 큰 분야다. 자의성이 강한 일부 학설에 따라 전시 내용을 구성하면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일반인과 학생들의 역사 인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박물관 전시의 경우 올바른 역사 사실의 전달에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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