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방치하면 2년 안에 민주주의 와해될 수도"

강한들 기자 2022. 9. 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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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 평화상' 필리핀 언론 CEO 마리아 레사 특별 강연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 래플러 CEO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로운 시대의 저널리즘과 시대정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빅테크 기업, 분노·혐오의 거짓말 유통…세계 극우 정치인들도 편승
소셜미디어는 ‘쓰레기’에 보상…세계 민주주의가 50년 전으로 후퇴
민주주의 잃지 않으려면 ‘사실’을 보호할 만반의 준비 할 필요 있어

미국 TV뉴스 채널 CNN 기자 출신인 마리아 레사(59)는 2012년 필리핀에서 온라인 뉴스 매체 ‘래플러’를 설립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 진행한 ‘마약과의 전쟁’의 폭력성을 집중 조명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인들과도 맞서 싸웠다.

두테르테 정권은 마리아를 10건 이상 고소했다. 재판에서 모두 패한다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마리아를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와 함께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발표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두려움을 모르는 옹호자’라고 설명했다. 마리아는 “평생을 감옥에서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마리아 레사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를 찾아 ‘새로운 시대의 저널리즘과 시대정신’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열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언론진흥재단, 매일경제 등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마리아는 소셜미디어의 폐해 때문에 세계의 민주주의가 5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봤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를 이용해 어떤 계정을 더 노출하고, 어떤 계정을 덜 노출할지 정한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사람들의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정보는 더 빠르게 퍼진다. 지난해에 미국 뉴욕대 등 연구진이 2020년 대선 전후로 페이스북을 분석해보니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6배 더 많이 퍼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마리아는 “게이트 키퍼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빅테크 기업은 분노와 혐오가 점철된 거짓말을 유통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는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보상하지 않고, 쓰레기에 대해서 보상을 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극우 정치인들은 ‘사실’ 자체를 공격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했던 기성 매체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독재자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현 필리핀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직접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필리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6년 연속 세계 최고 수준이라 가짜뉴스가 퍼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이런 ‘정보공작’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면 가짜뉴스를 다루는 기성 언론도 생긴다. 정치인은 이런 보도를 이용해 다시 대중의 인식을 강화한다. 대선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은 ‘온라인 여론전’을 펼친 사실을 인정하며 “주류 언론이 나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고, 심지어 독립 매체 래플러는 항상 나를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사실이 없으면 진실이 없고, 진실이 없으면 신뢰가 없다. 신뢰가 없다면 공동체가 공유하는 인식이 없어져서 협력할 수 없어진다”며 “그렇다면 우리는 기후변화, 코로나19와 같은 거대한 문제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이런 경향이 유지된다면, 2년 안에 민주주의가 와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나이지리아 등 선거를 앞둔 나라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독재자’가 선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브라질 대선은 오는 10월이지만, 브라질에서는 이미 대선이 조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심고 있다”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세계에서 ‘자유’와 거리가 먼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사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리아는 필리핀 16개 언론사를 모아 공동으로 ‘팩트 체크’를 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런 팩트 체크에 ‘감성’을 더해 소셜미디어에 유통해주는 시민사회단체, 기업, 교회 등도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사람에게 우호적인 정보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분석하고, 여론조작이 일어날 때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의 도움도 받았다. 마리아는 “시간이 없다. 민주주의를 잃지 않기 위해 매분 매초가 중요하다”며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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