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방정식 된 '중기 적합업종' 지정..산업환경 급변 속 실효성 논란

김은성 기자 2022. 9. 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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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0여년 만에 존폐 기로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5월24일 동반성장위원회가 개최된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대리운전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여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적합업종 지정 땐 3년간 관련 업종·품목에 대기업의 진입 제한
대기업의 대리운전 유선 콜 진출 놓고 사업자와 기사 입장 갈려
KDI “중기 경쟁력 약화”에 동반성장위 “최후의 사회적 보호망”

“대기업이 앱 콜을 통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허용한 것으로 대기업 편을 들었다.”(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대리기사들의 권익과 소비자 후생을 위해 경쟁을 한다면 대기업 진출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전국대리운전노조)

동반성장위원회가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것에 대한 대리운전 사업자와 대리기사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동반위는 올해 5월 향후 3년간 전화 유선 콜에 한해 대기업의 신규 진출 금지를 권고했다. 현재 대리운전 시장은 유선 콜과 플랫폼이 각각 80%, 20%를 차지한다.

이에 중소 대리운전사업자로 구성된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는 “대기업 의견만 담은 반쪽짜리안으로 플랫폼을 통한 시장 확대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기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전국대리운전노조는 “동반위 논의가 기존 중소업체 수수료 지키기와 시장점유율 담합으로 흐르고 있다”며 “시민의 안전과 기사의 권익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동반위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후 SK그룹 계열의 티맵모빌리티는 지난 6월 시장 1위 유선 콜 중개 프로그램사 로지소프트를 인수해 로지 이용업체 중 ‘티맵 대리’와 콜 공유에 동의한 파트너 업체와 테스트를 하고 있다. 연합회는 유선 콜 공유를 티맵 대리와 공유하면 고객을 뺏길 것이라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반면 기사들은 로지소프트의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로지소프트는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목표를 달성하는 기사에게만 성수기에 배차하거나, 기사가 콜을 취소하면 일정 시간 주문을 받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제도로 악명이 높았다. 대리기사 A씨는 “불투명한 수수료 착취와 할당량을 채워야 배차를 부여하는 등의 불공정 관행으로 무리하게 운전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티맵 인수로 근무환경이 개선되면 소비자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A씨는 “대리운전 시장은 중소업체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골목깡패처럼 군림해 갑질을 해왔다”며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대기업 시장 제한이라는 접근방식으로는 기존 업체의 독과점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반위는 티맵의 유선 콜 중개 프로그램 업체 인수와 콜 공유 문제 등에 대한 세부안을 만들기 위해 다음달에도 논의를 이어간다. 대리운전업의 중기 적합업종 논의가 1년이 넘도록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적합업종 지정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이처럼 플랫폼 경제 성장 등 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존처럼 대·중소기업 간의 대립구도를 해결해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시행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시작부터 논란을 낳았다.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으나 산업발전을 저해해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3년간 관련 업종과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사업 확장과 진입 자제가 권고된다. 지정 기간은 3년의 범위에서 한 번 더 연장될 수 있어 최대 6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현재까지 111개 품목이 지정돼 108개가 기간만료로 해제됐다. 지금은 대리운전업 등 3개 업종에 대해 적용하고 있다.

이 와중에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기획재정부 산하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 보고서를 통해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까지 내놓자 논란에 불을 붙였다. KDI는 “적합업종제도는 사업체의 퇴출 확률을 낮춰 사업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보호 역할은 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를 보였다”며 제도 폐지를 주문했다.

동반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성숙기 및 쇠퇴기 업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사회적 보호망이라며 반박했다. 동반위 관계자는 “대·중소기업 간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일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제도로 자율적 동반성장이 어려운 마지막 단계에 제한적으로만 활용된다”고 말했다. 동반위는 제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108개 품목에 대해 성과 등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실시해 개선할 부분에 대한 보완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적합업종제도가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는 만큼 경제적 효과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주문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집중되고 있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 충격 등을 감안해서라도 현 수준은 유지하되, 제도를 보완해 소비자 편익을 높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산업 성장 등으로 갈등양상이 복잡해져 적합업종 지정이 고차원 방정식이 돼버렸다”며 “중소기업 간에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소비자 후생을 제고하고 자생력을 높일 수 있게 정책을 보완해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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