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콘텐츠, 100세 동아일보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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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탈피, 디지털 제작경험 부여
30대 디지털 팀장이 내린 의사결정
상부선 적극 수용, 전사적으로 지원
디지털 전환에서 오랜 기간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동아일보에서 최근 변화 조짐이 보인다. 업의 본질에 천착한 디지털 저널리즘을 지속 시도하는 ‘히어로콘텐츠’를 필두로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지는 중이다. 고품질 콘텐츠를 통한 성공적인 브랜딩 차원을 넘어 ‘히어로콘텐츠’가 100년 된 신문사 조직 내부에서 해온 역할을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전환의 성패가 결국 구성원과 조직의 변화, 리더십의 태도 등 유구한 문제에 달렸다는 점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특히 주요하다.
◇언론사 뉴스 브랜딩의 성공 사례 ‘히어로콘텐츠’
히어로콘텐츠팀 5기가 지난달 13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2020년 5월 1기를 출범한 팀은 기존 출입처 취재 방식에서 하기 어려웠던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독자들이 더 몰입해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제작”한다는, 뉴스전달에서 최적의 방식을 고민하는 게 탐사보도팀과 구별된다. 팀은 기수마다 4~6명의 편집국 취재기자가 참여하는 비상설 형태로 운영돼 왔다. 경영전략실 산하 디지털이노베이션팀(정규직 5명, 인턴 5명)의 제작·전략 파트 중에서 제작 쪽과 긴밀히 협업, 무제한의 자유와 취재기간이 허용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돌아가는 식이다.
지난 2년 간 히어로콘텐츠는 한국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기자상 등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일반 독자들의 호평도 이어지며 ‘퀄티리 저널리즘이란 방법론으로 동아미디어그룹의 브랜드 가치와 영향력을 제고한다는 목표’를 상당히 성취했다. 이샘물 동아일보 디지털이노베이션팀장은 지난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디지털 저널리즘과 협업’ 강의에서 “‘저희가 하는 일이 회사에 돈이 되냐’고 물을 때 저는 단호하게 ‘1도 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4~5개월씩 취재하다 보면 기자들이 ‘인건비 다 환산하면 이게 몇 억짜리’란 얘길 하는데 중요한 건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얼마를 남길지라고 본다”고 했다. (관련기사: <장기기증인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 100일간 기록하다>, <[이달의 기자상]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이달의 기자상] 증발, 사라진 사람들>)
◇히어로팀이 기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챌린징’ 시키는 방식
외부 평가와 별개로 무제한의 자유와 취재가 허용된 팀은 조직 내에서 기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장기기증을 다룬 2기 ‘환생’ 땐 뇌사자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곧장 부산으로 내려가 취재를 했다. 3기 ‘K팝 아이돌’ 땐 한 취재원을 4명이 각각 1번 이상 만나가며 각자 가진 시각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관련 링크: <한 곳을 바라본 네 개의 '다른' 시선>) 출입처를 맡을 땐 불가능했고 기자를 꿈꿨을 땐 가능했던 취재, 기존과 다른 기사쓰기를 경험했다. 1~3기까진 차출을 했던 팀은 4기부턴 공모를 통해 기자들을 선발한다. 이 팀장은 “무한한 시간과 자유를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로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았다”며 “반면 취재팀장은 퀄리티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만큼 ‘전 기수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어깨가 무거워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매 기수마다 새로운 취재 방식과 기사 형식, 기술적 시도를 하며 참여자들에게 계속 도전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제복 공무원의 의로운 죽음 이후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5기 ‘산화’에선 스트레이트 기사와는 완전히 다른 문체와 구성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내러티브 스터디’를 진행했다. 특히 문체가 중요했던 만큼 기사 작성자를 고르는 데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다. 취재기자 4인이 각각 샘플기사를 작성,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기자가 전체 기사 초고를 쓰도록 한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로선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소방관을 3D로 구현하기 위해 ‘포토그래머트리’ 기술을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히어로콘텐츠 중에선 처음으로 시리즈 주제를 지면과 디지털 전용으로 아예 분리해 별도 제작한 측면도 있다. 소재, 관점, 독자층 확대, 외국어 릴리즈 등 매번 새로운 도전이 시도됐고, 종료 후엔 매번 평가와 개선보고서를 작성했다. 젊은 기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 상설 디지털 부서에서 지속적으로 ‘챌린징’ 할 수 있는 요인을 만들어주는 방법과 관련해 타 매체에 고민을 남기는 지점이다.
◇신문을 벗어난 디지털 제작경험 및 교육의 요람
100년 업력의 신문사에서 히어로콘텐츠팀은 기자들에게 신문을 벗어난 제작경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 역시 해왔다. 참여자들이 제작후기를 남기는 동아일보 ‘디오리지날’의 코너 ‘인사이드(Inside)’를 보면 신문기자로만 살던 기자들이 처음으로 디지털 제작에 참여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고민, 부담감, 극복의 과정 등이 상세히 담겨있다.
예컨대 4기 ‘공존’에 참여한 위은지 기자는 기획자 역할을 맡으며 참고한 해외 시리즈, 독자가 다음 회차를 읽도록 유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가장 큰 난관이었던 UI디자인, 사내 협업의 과정 등에 대해 적어뒀다. 같은 기수에서 영상을 담당하며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어본 남건우 기자는 “처음 영상 촬영을 할 때만 해도 팀원들은 (중략) 오디오가 겹치게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촬영 중인 카메라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촬영 후반부에는 취재원이 말할 때 소리를 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고 적기도 했다. 기수별 차이는 있었지만 영상편집, 코딩을 배우기도 했다. 히어로콘텐츠팀이 아니었다면 참여 자체가 어려웠을 기자들까지 디지털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조직 전반의 디지털 역량을 키울 관련 세미나 역시 마련되면서 교육 기회 자체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 디지털이노베이션팀은 우수 디지털 콘텐츠 사례 등을 소개하는 ‘눈높이 세미나’를 격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개최, 20회차를 진행했다. 격주로 여는 ‘미디어 트렌드 세미나’도 최근 새로 시작되면서 매주 기자들, 계열사 직원 등에 교육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무엇보다 신문을 벗어난 접근법, 디지털의 제작양식을 기자들이 체험케 한다는 측면이 크다. 이 팀장은 강의에서 “기자들은 모든 걸 텍스트 기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독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한다. 멀티미디어 제작은 빈 도화지에 어떻게 전개할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텍스트 틀을 깨보는 기회를 주는 측면도 있다”면서 “디지털 제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부서로 돌아가더라도 생각의 폭이 넓어져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목표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히어로팀의 성과가 반이라면 교육이 반이다. 설령 성과가 실패해도 기자들에게 축적되는 경험은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바텀업’ 적극 수용하고 지원하는 리더십
이 같은 역할은 ‘어떤’ 리더십의 태도로 가능했다. 디지털 전환 핵심 부서인 디지털이노베이션팀엔 상당한 권한과 높은 자유도가 부여돼 있다. 기사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이 편집국장에 있다면 디지털 제작에서 결정권자는 디지털이노베이션팀장이다. ‘30대 팀장’이 회사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 제작에 대한 결정을 하고, 동아미디어그룹 전체의 디지털 전략에 관여한다. (관련기사: <"숲 밖에서 숲을 보자"...실리콘밸리로 달려간 7년차 기자>) 적임자를 발탁한 후 ‘바텀업(bottom-up)’ 의사결정을 위에서 적극 수용하고 지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방식이다. 지난해와 올해 동아미디어그룹은 디지털 관련 보직자로 90년대 중후반 출생 20대 2명에 대해 팀장 인사를 내기도 했다.
현재 디지털 전환에서 일정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 국내 언론 다수가 사주 혹은 경영진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바탕을 뒀다는 점과 구분된다. 사주가 있는 회사는 장기계획을 이행하는 데 장점을 갖지만 정답을 모르는 디지털 전환이란 문제에서 종종 구성원, 특히 더 오랜 기간 언론사 밥을 먹어야 하는 중간관리자 이하 기자들의 동의와 무관한 방향으로 갈 위험도 안는다. 편집국장 인사만으로도 산하 디지털 주무 부서의 권한과 입지가 영향을 받고, 디지털 콘텐츠를 많이 본 적도 없고 제작에도 관여하지 않은 ‘윗분’ 말 한마디에 프로젝트가 흔들리는 일은 빈번하다. 디지털 부서 팀장을 지낸 한 언론사 기자는 “히어로콘텐츠가 주니어기자에게 ‘내가 이걸 하려고 기자를 했지’ 하는 ‘저널리즘’으로 어필한다면 시니어에겐 ‘나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후배들이 새로운 걸 하려고 한다’는 ‘디지털’로 다가가며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바라봤다.
이 팀장은 “결과물에 대해선 생소해 하면서도 ‘좀 더 파격적으로 해도 된다’는 지지를 해주는 일이 많고 히어로팀엔 자율성을 보장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히어로 팀원을 둔 한 부장은 우연히 팀원을 만났는데 혹시 부담이 될까 ‘요즘 뭐하냐’ ‘언제 오냐’는 말도 못하고 ‘고생한다’는 말만 했다고 할 정도로 조심스러워 하는 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면 절반의 진실은 투자가치를 입증하지 못한 데도 있을 것 같다. 팀원들에게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할 테니 여러분들이 입증하는 걸 도와달라고 자주 말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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