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보'는 옛 서민들 생활의 지혜로 빚어낸 종합예술이죠"

김경애 2022. 9. 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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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어르신에게 내 바느질을 보여 드렸다. 그랬더니 "아이구, 개 이빨만도 못하네" 하며 "다 틀렸다"라고 하셨다. "할머니, 이것도 규칙이 있나요?"라고 물으니 "세상만물 다 규칙이 있지, 규칙이 있어야 조각보가 안 미어지고, 해 놓으면 참하다"라며 틀린 바느질을 짚어 주셨다. 그렇게 할머니를 통해, 바느질의 규칙을. 그리고 민보와의 연(緣)을 잇게 되었다."

염색미술가로 대를 잇고 있는 아들 이형관씨는 전시 소개글에서 "조각천의 태생적 궁핍함을 천진난만한 해학으로 끌어올린 구성과 독창성이 놀랍다. 그 자유분방함은 작의적인 디자인의 한계를 한번에 뛰어넘는 특별한 해방감까지 느끼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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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미술가 김정화 작가 '민보와 색 이야기'
외할머니·어머니 조각보 등 40여점 전시
24일까지 티하우스 산수화 밪 갤러리에서
염색미술가 김정화 작가가 9월17일 ‘민보와 색 이야기’ 전시장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외할머니(오른쪽)와 어머니(왼쪽)의 민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어느 날, 한 어르신에게 내 바느질을 보여 드렸다. 그랬더니 “아이구, 개 이빨만도 못하네” 하며 “다 틀렸다”라고 하셨다. “할머니, 이것도 규칙이 있나요?”라고 물으니 “세상만물 다 규칙이 있지, 규칙이 있어야 조각보가 안 미어지고, 해 놓으면 참하다”라며 틀린 바느질을 짚어 주셨다. 그렇게 할머니를 통해, 바느질의 규칙을. 그리고 민보와의 연(緣)을 잇게 되었다.”

염색미술가 김정화(66) 작가가 오는 24일까지 서울 한남동 산수화 티하우스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와 함께 주최사인 갤러리 밪(B.A.A.T)을 통해 <민보와 색 이야기>(기획 정혜주·구술정리 김일다 작가)도 펴냈다. 서울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왕의 색-대홍> 주제로 염색작품 전시를 한 지 11년 만이다. 그때는 아무나 만들지도 사용할 수도 없었던 귀한 ‘홍화 염색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어 주목을 받지 못했던 ‘쪼가리 천’이 주제여서 대조적이다.

직접 염색한 천을 이용해 ‘민보’를 만들어보이고 있는 김정화 작가. 사진 김일다 작가 제공
옛 시골 할머니들의 구술대로 면과 면 사이에 꺾여들어가는 솔기가 생기지 않고 앞뒤면 따로 없게 이은 김정화 작가의 바느질범. 사진 김일다 작가 제공

“지금은 보자기라 하면 ‘큰 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화려한 오방색 조각보는 ‘장식용 공예품’으로 대접받고 있죠. 하지만 옛 시절 서민들에게 온전한 ‘하나의 큰 천’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원하는 크기로 잘라 쓴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그러니 천 자투리나 쪼가리만 있다면, 어떠한 형태든 사용 가능한 최대치로 만든 것이 민보였어요. 자연발생적인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죠.”

김 작가가 ‘민보’를 만들게 된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 영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다. 갑자기 기운 가정 형편 탓에 미대를 포기하고 농업기술센터의 생활지도사로 일하며 그림 작업을 하던 그는 서양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기 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부터 전통염색법을 아는 촌로들의 체험을 구술채록하고, 색에 대한 온갖 기록을 뒤져가며 염색을 연구한 그는 30년에 걸쳐 200여 가지 색을 찾아내 자신 만의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완성해냈다.

김정화 작가의 ‘민보’ 전시를 하고는 서울 한남동 티하우스 산수화의 전경. 김경애 기자
김정화 작가의 ‘민보’ 전시를 하고는 서울 한남동 티하우스 산수화의 지하 밪 갤러리의 전경. 김경애 기자
다채로운 천연염색의 색감과 비정형의 기하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김정화 작가의 ‘민보’ 작품. 김경애 기자

“염색 작품과는 별개로, 한가지 식물 염재에서 다채로운 색을 뽑을 수 있는 샘플을 만들어냈는데, 그 색의 차이를 잘 보여주려면 단계별로 이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느질을 시작했죠. 어르신들의 가르침대로 면과 면 사이에 꺾여들어가는 솔기가 생기지 않게 계단식으로 이었죠. 밥상보로 덮어도 음식물이 솔기 틈에 끼이지 않게 한 생활의 지혜도 담겨 있어요.”

그렇게 10년에 걸쳐 그가 만들어놓은 민보는 무려 200개가 넘는다. 염색 작품을 만들고 쪼가리 천이 나오면 디자인을 구성한 뒤 동네 여성들 10여명에게 바느질법을 훈련시켜 품삯을 주고 마무리했다. 그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조차 해보지 않은 까닭에 민보의 값도 매길 수가 없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든 민보를 포함해 40여 점을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염색미술가로 대를 잇고 있는 아들 이형관씨는 전시 소개글에서 “조각천의 태생적 궁핍함을 천진난만한 해학으로 끌어올린 구성과 독창성이 놀랍다. 그 자유분방함은 작의적인 디자인의 한계를 한번에 뛰어넘는 특별한 해방감까지 느끼게 한다”고 했다.

(02)749-3138.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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