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폐장 대책도 없이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한 환경부
환경부가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투자 기준인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20일 발표했다. 원자력 기술 연구·개발, 원전 신규 건설, 원전 계속 운전 등 3개 분야의 원전 경제활동을 새로 넣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개정안 초안을 공개한 것이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원전을 포함한 이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원전을 배제한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한 지 9개월 만에 방침을 뒤바꾼 것이다. 환경부는 유럽연합의 택소노미를 참고하고 국내 여건을 감안해 이번 초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연합에 비해 기준이 느슨한 데다 핵심 조건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에 대해선 시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방안으로는 녹색에너지 환경에 부응할 수 없다. 여론 수렴을 통해 재검토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지난 7월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면서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확보·가동 시한을 2050년 이전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환경부는 국내의 경우 정부 계획이 이미 있어 구체적인 연도 제시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확정된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말하는데, 거기에는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내 시설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다. 내년에 시작해도 2060년에야 가동된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9차례나 시도됐던 입지 선정이 모두 실패했다. 결국 이번 정부안은 방폐장 확보는 놔둔 채 원전을 운영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구체적인 방폐장 건설·운영 계획 없이 원전을 ‘친환경’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정부안은 또 고온에서도 화재·폭발 위험을 줄이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기를 2031년으로 지정했는데 유럽연합의 기준(2025년)보다 6년 늦다. 이 기준이라면 향후 9년간 국내 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안 써도 친환경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6년의 유예 기간 안에 신규 원전(신한울 3·4호기)과 기존 노후 원전 10기의 건립·연장 심사 및 허가를 진행할 수 있어 유명무실한 규정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안보 확보 수단으로 원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은 아직도 위험한 에너지원이다. 핵폐기물처럼 후손들에게 엄청한 부담과 위험을 남기는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환경부는 다음달 6일 공청회를 열고 연내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요식 행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전문가, 시민사회 등 각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환경부가 ‘원전 포함은 확정’이라고 사전에 못 박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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