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행복을 전하는 구두 수선공 김병록 씨

전하연 작가 2022. 9. 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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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이혜정 앵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세 평 남짓 작은 구둣방을 운영하는 수선공 김병록 씨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코로나가 확산될 때는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마련한 7억 원의 땅을 기부하기도 했죠. 


오늘 스튜디오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먼저 자기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서울 상암동에서 구두 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 김병록입니다.


이혜정 앵커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셨는데요,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김병록 / 구두 수선공 

남한테 행복을 드리려고 행복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제가 즐겁고, 닉네임이 그냥 행복한 사람이 돼서 행복을 늘리려고 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먼저 어떻게 구두 닦는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가장 형편이 어려워서 사회생활을 일찍, 배가 고파서 8살 나이에 나와서 노숙 생활, 밥도 얻어먹기도 해 보고, 또 요새 학생들은 모를 거예요. 


껌팔이 등 배가 고프니까 그걸 하다가 어느 형이 12살 때 구두 닦는 일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그때 그 형을 따라서 열심히 배워서 그때 시작했던 겁니다.


이혜정 앵커 

어린 나이에 그런 일들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봉사를 하시게 된 걸까요?


김병록 / 구두 수선공 

그때도 낮에는 열심히 구두 닦고, 밤에는 대학생 누나, 형들이 한글을 가르쳐주더라고요. 


그러고 열심히 배워서, 정말 고마웠어요.


저 누나, 형처럼 나도 뭔가 사회에 필요한, 저런 사람이 되겠다 다짐해서, 어렸을 때 저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빛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길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른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오면, 갚는다는 게, 지금 와서 봉사하거든요.


이혜정 앵커 

네, 그런데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고 계세요. 


원래 본업은 구두를 수선하고 닦는 일이신데, 이발 봉사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제가 돈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뭘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보니까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했죠. 


처음에 구두 수선을 잘 하니까 집에서 쓰지 않는 구두라든가, 저한테 주면 제가 수선해서 이렇게 나눠드리고, 지금도 상암동에는 찾아올 수 있도록 이렇게 마련 장소를 마련해놨습니다. 


그 후로 1997년 IMF가그 때 왔었어요.


그때 독거노인이라든가 어려운 노숙자들, 많이 상이하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때 집사람한테 돈 달라고 해서 이발 학원에 가서….


이혜정 앵커 

이발도 배우신 거고.


김병록 / 구두 수선공 

배워서 그때부터 이렇게 독거노인뿐 아니라 장애인 시설이라든가 요양원, 양로원 같은 데 다니면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이렇게 봉사를 계속 하시려면 참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봉사를 할 수 있었던 힘, 무엇일까요?


김병록 / 구두 수선공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항상 가기 전에는 마음이 설레고 진짜 즐거웠어요. 


그리고 갈 때마다 내가 사우나에서 몸을 지지는 것처럼 마음을 닦는 마음으로 가서 그분들한테 봉사하게 되면 마음이 변하고 또 재충전이 돼요. 


일주일 동안 그 충전된 몸으로 삽니다.


이혜정 앵커 

아마 봉사를 통해서 또 충전을 해 오셨다는 말씀이시죠. 


기부와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그동안 기억에 남는 것도 많지만 저는 봉사라든가, 이렇게 도와드리면 기억을 안 하기로 작정했어요. 


왜냐하면 미련이 남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한테 돈 받고 조금이라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 새기고, 내가 하는 것은 돌아 본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우리가 2년 전에 코로나로 인해서 정말 이웃들이 힘든 시기를, 절망의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무려 7억 원이에요. 


그런 땅을 파주시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으셨는데요. 


이런 결정,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그 전에도 조금씩 도와주고 있었는데, 단체라든가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도와주고 있는데,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코로나가 왔어요. 


그래서 처음 시작이 마스크 대란이 와서 난리 났었잖아요. 


그때 제가 있는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술이나 담배를 안 피우니까 그 돈을 항상 통장에 모아놔요. 


그 돈을 풀어보니까, 주민센터에 가니까 저는 모르죠, 내 이름으로 안 보냈으니까. 


근데 뉴스가 한 번 나오더라고요. 


그게 한 100만 원 돈이….


이혜정 앵커 

이름도 밝히지 않았죠.


김병록 / 구두 수선공 

그냥 나왔죠. 


그 후로 더 코로나가 장기화되니까 나라 경제가 위기가 오잖아요. 


주변에 장사하는 사장님들 일용직 근로자들 그분들이 아주 그냥 아우성하더라고요, 힘들다고. 


내가 며칠 동안 고민을 했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다 보니까 있는 건 없잖아요, 돈도 많이 없고. 


그러니까 산을 두 마음에 쌓았어요.


한쪽은 '줘라' 한쪽은 '주지 마라' 3일 동안 헤매다가 악한 쪽은 '이게 어떤 돈인데' 다른 쪽은 '이럴 때 돈을 써야지, 내놔야지'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이 어려운 시기에 나라도 나라에 내놓으면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한테 용기와 희망을 줄 것 같아서 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오늘 하신 말씀 정말 많으시겠지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드릴게요. 


앞으로 어떻게 더 봉사를 해 나가실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김병록 / 구두 수선공 

봉사보다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어려운 이웃이라든가 쪽방촌 노숙자분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거리에 이발사로 남고 싶어요.


이혜정 앵커 

거리의 이발사로.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보통 기부나 나눔이라고 하면 내가 풍족할 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속에서도 나누시는 모습을 보니까 제가 더 감사합니다. 


더 건강하시고 더 따뜻한 소식으로 또 뵙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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