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연구개발특구, 소통의 놀이터가 필요하다

이상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연구원

연구개발특구는 지난 50여년 동안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발전을 이끌어왔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반도체, 국방산업과 더불어 현재의 코로나19 대응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이루어왔다.

이러한 연구개발특구에서는 현재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소통이 자리 잡고 있다. 각 구성주체들은 지속적으로 협의체를 운영 중이며, 자기영역을 뛰어 넘는 네트워크를 구상중이다. 하지만 활성화된 소통기반 구성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각 분야의 기술혁신을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시킨 집단을 말한다. 따라서 연구기관들은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했고, 외부와의 단절이 이루어진 폐쇄적 연구소 네트워크는 동일한 지식과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빠르게 기술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소통과 협업을 통한 융합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은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도 명확하게 구분됐던 지리적 거리들과 아울러, 단절돼 있던 인적 네트워크들은 융합과학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 돼 버렸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연구개발특구는 다양한 방식의 소통들이 제시되고 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소통 플랫폼 구축이나, 각 분야의 융합을 위해 전문가 풀을 구성해 정기적인 포럼을 개최하는 등 연구개발특구의 소통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활동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일회성에 그치거나 단기적인 성과 창출에만 머무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많은 사람들은 실리콘밸리 모델을 제시하곤 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모델은 실패에 너그러운 문화, 개인의 창의력 존중 등으로 대변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가들은 정부, 학계, 관련 기업인을 대상으로 능동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회사 근처의 까페에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수많은 동업자와 경쟁자들이 즐비하며, 이들과의 자유로운 대화는 또 다른 성공아이디어를 낳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실리콘밸리 성공 모델을 보며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곤 한다. 바로 현재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실리콘밸리의 구성원들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를 따라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을 모아놓지만, 그 모임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한 결과를 내길 원한다. 톱다운 식의 성과도출 프로세스는 이전시대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겉옷만을 다양한 분야의 소통협력으로 차려 입은 모양새다.

놀이터는 놀이터다워야 한다. 체력증진을 목적으로 놀이터를 짓게 되면 놀이터의 시설들은 체력단련 기구들로 채워질 것이다. 누구나 체력증진이란 목적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명확한 목적만을 추구하는 놀이터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놀이터가 될 뿐이다. 오히려 아무런 기구가 없는 모래밭이야 말로 아이들에겐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기반이다. 그리고 그러한 놀이터에서 하나 둘씩 모여들어, 자유롭게 주고받는 대화들은 아무것도 없던 놀이터를 가장 다양한 놀이시설이 갖춰진 최고의 놀이터로 탈바꿈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