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오징어게임과 수리남이 놀라운 점

2022. 9. 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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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6관왕에 올랐다. 에미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시상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핵심이 9월에 거행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이다. 바로 이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오징어게임'이 올해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것이 특히 놀라운 것은 다른 시상식도 아닌 에미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영상 부문 양대 시상식이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이다. 아카데미상은 영화를, 에미상은 TV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다. 영화보다 TV드라마가 지역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아카데미상보다 에미상의 장벽이 더 높다. 미국중심주의, 영어중심주의가 더 강한 것이다. 바로 그런 에미상에서 수상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미국 TV 시상식에서 한국어 드라마가 주인공이 됐다.

이정재의 남우주연상은 더욱 놀랍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 당시에도 남우주연상은 받지 못했었다. 후보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 내에서도 송강호를 외면한 아카데미상에 대해서 비판이 나왔었다. 이 사건은 미국 시상식에서 연기 부문의 언어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하게 했다. 그래서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주연상이 아닌 조연상이었고, 작품도 한국 작품이 아닌 미국 작품이었다. 오영수가 '오징어게임'으로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는데, 이때도 조연상이었다. 연기상의 정점인 주연상은 한국어 연기를 외면했다.

사실 이건 꼭 차별이라고만 단정할 일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 국내 시상식에선 자국어 연기가 우선이다. 우리나라 연기대상이 외국인의 외국드라마 외국어 연기에 주연상을 시상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이정재가 현실로 만든 것이다. 미국드라마 최고 시상식에서 한국드라마의 한국어 연기로 한국인이 주연상을 받았다.

이것은 이정재의 연기가 특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상을 안 줄 수 없을 만큼 '오징어게임' 열풍이 뜨거웠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헐리우드가 있는 미국 LA의 시의회가 '오징어게임'의 날을 제정했을 정도다.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매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기생충'을 비롯해 그전부터 누적된 한국 콘텐츠에 대한 평판, 한국 콘텐츠에 시상하지 않았을 때 미국 내에서 제기됐던 비판들, 이런 일들이 쌓여 에미상 주연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극명히 드러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리남'과 관련해서 남미의 수리남 정부가 우리 외교부에 항의해왔다는 것도 놀라운 사건이다. 제작단계에서부터 항의가 제기돼 '수리남'의 영어제목이 '나르코스 세인츠'로 교체됐다고 한다. 수리남 정부가 한국 드라마를 신경 쓴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작품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가 아니라, 제작단계 때부터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과연 수리남 정부가 제작중인 한국 드라마에 대해 신경이나 썼을까?

제작단계는 물론, 완성된 이후 한국에서 히트까지 했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정도에서 히트했어도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공개도 안 된 상황에서 제작 발표 정도만 이루어졌을 뿐인데 바로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지금 세계적으로 얼마나 주목 받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오징어게임'의 에미상 수상과 '수리남'에 대한 수리남 정부의 항의는 한류 콘텐츠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사상 최고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사상'이란 지금까지의 역사상이란 뜻이다. 미래에도 현재가 최고점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또다른 최고점을 향한 출발점 정도로 기록될지 그건 아직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건 지금 우리 대중문화산업이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곳까지 왔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적은 있었는데, '오징어게임'은 서구의 일반 대중 사이에서 열풍이 나타났다는 점도 특기할 지점이다. 이런 열기 속에서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대박, 오빠, 언니, 한류 같은 한국어 단어를 등재하기까지 했다. 한국 문화가 서구권에 스며드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매우 호의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업계가 작품의 질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지금과 같은 흐름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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