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타살의 배후

한겨레 2022. 9.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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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19일 오전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를 비롯한 청년단체 회원들이 역무원 스토킹 범죄 사건이 일어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스토킹 범죄 피해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독일의 저명한 갈등 연구자인 빌헬름 하이트마이어는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장기적 연구들을 통해 극우주의나 증오범죄 같은 ‘극단적’ 현상들이 실은 사회 ‘중심부’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중요한 이론을 정립했다. 정치인, 고위공직자, 언론, 지식인 같은 집단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사회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때론 그런 행동을 용인하고 고무·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법 위반을 넘어 사회의 일반적 가치와 규범을 파괴하는 행위를 우리는 패륜, 만행, 참극으로 부르며 비난한다. 사회는 이런 개인과 집단을 병리적·일탈적·극단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사회 중심부를 정상적·윤리적 존재로 재현하는 상징구조를 보존한다. 하지만 제도 중심부 행위자들은 사회의 가치, 규범, 법률을 공공연히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행동을 고무한다.

최근 미국, 브라질, 헝가리,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실업자, 빈민, 복지 수혜자, 이주자, 여성, 장애인 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곤 했다. 민주주의 연구자 스테펀 해거드와 로버트 카우프먼은 이를 ‘잠행에 의한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불렀다. 전면적으로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곳곳에서 서서히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가 부식돼 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위험이 만연해 있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그녀를 수년간 스토킹한 남성 동료에게 살해됐다. 올해 상반기에 경찰에 잡힌 스토킹 범죄자가 3000명에 이른다 하니, 이 사건은 매일 벌어지는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셈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2080명이 사망한 것처럼, 이는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하지만 ‘사회의 타살이다’, ‘국가가 죽였다’, ‘구조의 폭력이다’ 같은 식으로 주어를 추상화하는 것은 진짜 책임을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다. 여성혐오 살인, 노동자 산재사망, 빈곤 고독사, 성소수자 자살 등 사회적 원인이 있는 죽음들에는 구체적 배후세력이 있다. 그들은 누구도 죽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죽게 하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고 온존시키는 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협박에 시달리다 피의자를 고소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피해자는 결국 살해됐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이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사건’ 434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의 87%가 검찰과 법원에서 반려·기각됐다고 한다. 범죄의 중대성과 재범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이 현상을 보는 눈과 이들이 사회를 향해 발신하는 메시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사건이나 얼마 전 인하대생 성폭력 추락사 때 ‘남녀 프레임에 반대한다’, ‘남녀갈등 증폭에 반대한다’는 동문서답만 내놓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이 밤길을 겁내는 건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사건들이 남녀 대결 문제가 아님은 당연하다. 여성만 범죄에 희생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심층문화와 욕망의 구조에 깔린 여성에 대한 성적 지배 의지가 이런 살인의 근저에 있음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지도자들은 그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하는 데 급급할 뿐 아니라, 그 본질을 말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

손에 펜을 쥐고 이런 논리를 유포하는 정치인, 장관, 언론, 지식인들이 손에 칼을 쥔 범죄자를 양산하고 사회의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지난여름 가로·세로·높이가 각 1m인 쇠우리에 몸을 가두고 근로조건 개선을 호소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유최안씨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철창에 붙은 종이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오직 ‘불법점거’만을 말했다. 회사는 파업노동자를 대상으로 470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극히 합법적인 간접살인이며, 어떤 폭력도 직접 행하지 않은 사회적 타살이다. 이 거시적 구조 안에서 수많은 노동자, 여성, 노인, 빈민, 장애인이 병들고 죽는 미시적 사건들이 일어난다. 설국열차의 맨 앞 칸에 열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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